●“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쪽에 제단을 쌓았다 하는지라”(11절)
요단 동편 지파인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는 요단 서편을 차지하기까지 앞장 서서 싸우라는 자신들의 책임을 완수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이들을 축복하고, 권면하여 요단 동편으로 돌려보냅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가 되는가 싶은데,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여 이스라엘이 전쟁의 위기를 만납니다.
시작은 르우벤과 갓, 므낫세 반지파가 요단 동편으로 돌아가다가 쌓은 큰 제단 때문입니다. 10-12절에는 이 제단의 위치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해서 나옵니다. “요단 언덕 가”라고 하는데, 11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들은즉 이르기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의 맨 앞쪽 요단 언덕 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쪽에 제단을 쌓았다 하는지라”고 합니다. 이 절은 “이스라엘 자손”과 요단 동편 자손을 구분합니다. 이런 구분이 오늘 본문에 계속됩니다. 13절에는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그들”을 구분하고, 16절은 “여호와의 온 회중”과 “너희”가 구분됩니다. 19절에서는 “너희의 소유지”(요단 동편)와 “여호와의 소유지”(요단 서편)가 구분됩니다. 문제가 발생하자 하나로 보였던 이스라엘에 구분이 생깁니다.
이런 구분 속에 제단을 쌓은 장소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쪽에 제단을 쌓았다”는 것을 보면 그들이 거주하는 요단 동편 땅이 아닌 요단 서편 땅에 제단을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들의 땅도 아닌데 왜 요단 서편에 제단을 쌓은 것일까요? 제단은 제물을 드리기 위해 만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무데나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성막에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레17:8-9절). 지금 성막이 있는 이스라엘 종교의 중심지는 ‘실로’입니다. 그러므로 요단 가에 쌓은 제단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가 아니라면 이 제단은 우상숭배를 위한 제단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것 또한 문제입니다. 이런 불순종과 우상숭배는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옵니다. 이미 그것을 여러 차례 경험했습니다. 그러니 전쟁을 해서라도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 전쟁을 하려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바로 전쟁하지 않고 대표단을 파견해서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자신들의 판단이 맞다고 생각되지만 혹시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기에 주의를 기울이는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유가 드러나지만 만약에 이런 과정이 없었더라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지마자 동족끼리 전쟁을 하는 비극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파견단의 대표는 비느하스입니다. 17절에도 나오는 브올의 사건 때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했던 인물입니다. 민25장의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고 있을 때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고 우상 숭배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한 사람이 비느하스입니다. 민25:11절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라고 합니다. 비느하스와 더불어 서편 지파에서 각 한 사람씩 10명의 지도자들이 함께 합니다.
우리 삶의 많은 문제도 오해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판단과 이해가 사실과 다른 경우들이 많습니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행동하므로 얼마나 많은 갈등이 발생되는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에서 교훈을 얻어야 겠습니다. 내 판단이 서더라도 주의 깊게 알아보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신중하게 접근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우리 중에서 소유지를 나누어 가질 것이니라”(19절)
대표단은 요단 동편 지파들을 만나 책망합니다. 16-18절이 그 내용인데 반복되는 말이 하나님께 범죄, 여호와께 거역, 여호와를 배반입니다(16,18,19). 이렇게 제단을 마음대로 쌓는 행동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요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그 예를 17절에서 브올의 사건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오늘까지 우리가 그 죄에서 정결함을 받지 못하였거늘 이라고 하는데 여전히 우상숭배와 음행의 유혹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20절에는 아간의 범죄도 거론합니다. 7장에 나온 것처럼 아간 한 사람의 탐심으로 이스라엘은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하고 군사들이 희생을 당했습니다. 아직도 가나안땅 완전히 정복하려면 계속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의 대안을 제시합니다. 19절 ”그런데 너희의 소유지가 만일 깨끗하지 아니하거든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 우리 중에서 소유지를 나누어 가질 것이니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서편 땅과 동편 땅을 구분합니다. 동편 땅은 하나님의 임재이 상징인 성막이 없기에 깨끗하지 않다고 생각된다면, 서편 하나님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기꺼이 소유지를 나누어 함께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자고 합니다.
본문을 보면 요단 서편 지파들이 하는 구분이 그렇게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제시한 제안은 아름답습니다. 요단 서편 땅을 분배할 때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땅이 작다고 불평했습니다. 후에 일곱 지파가 받은 땅은 크지 않은 땅들입니다. 유다는 시므온에게 이미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땅을 양보해서라고 함께 바르게 하나님을 섬기기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판단하고 정죄하며 문제만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공동체는 혼란에 빠집니다. 양보와 희생을 통해 함께 바르게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출처] 여호수아22:10-20절/요단 가에 쌓은 제단(25.02.03)|작성자 늘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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