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21:1-17절/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25.06.20)

2025.06.20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사탄이 …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1절)

​20장까지는 다윗과 이스라엘의 승리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21장은 다윗의 심각한 죄악에 관한 내용입니다. 역대기 저자가 다윗의 실수를 잘 기록하지 않았는데 이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그런데 이 실패를 통해 성전이 지어질 장소가 결정이 됩니다.

다윗의 문제는 인구조사를 한 것입니다. 1절은 사탄이 다윗을 충동해서 인구조사를 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삼하24:1절은 “여호와께서 … 다윗을 격동시키사 …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많은 승리로 교만해진 다윗의 마음을 사탄이 충동하여 인구조사를 하게 하였고 하나님은 그것을 묵인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왜 인구조사를 하려 했을까요? 그리고 왜 인구조사가 이렇게 심각한 죄가 되는 것일까요? 민수기에는 두 번의 인구조사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필요하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인구조사는 목적이 5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입니다. 한마디로 군인들의 숫자를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인구조사도 요압 장군이 맡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자신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얼마나 강력한 나라가 되었는지를 확인하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서 실시한 것이기에 문제가 됩니다.

지금까지 다윗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18:6절처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하십니다. 때론 적군의 숫자가 심히 많고 이스라엘 숫자가 적을지라도 하나님은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구조사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높이려는 목적입니다. 그래서 심각한 잘못입니다. 요압 장군도 인구조사가 하나님 앞에 범죄임을 말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듣지 않고 재촉합니다. 조사 결과 5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백십만 명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사십칠만 명”입니다.

다윗은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도 흔들리고 무너집니다. 특히 모든 일이 잘될 때 큰 승리와 성공을 거두었을 때 무너질 위험이 큽니다. 숱한 고난 속에는 오히려 하나님만 의지하고 인내했던 다윗이 승리를 거둔 후 교만이 자리잡게 되고,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늘 말씀과 기도로 깨어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잘 될 때, 성공의 삶을 살아갈 때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잘못에 대해 징계하시자 다윗은 즉시 회개합니다. 8절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고 합니다. 사울 왕은 잘못을 지적할 때 핑계하고 변명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즉시 인정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그 때에 여호와의 천사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 곁에 선지라”(15절)

​하지만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징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갓 선지자를 통해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잘못을 징계하시면서 이처럼 선택권을 주시는 것은 특이합니다. 어쩌면 이 과정을 통해 다윗의 잘못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깨닫도록 하심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세 가지는 12절 “혹 삼년 기근이든지 혹 네가 석 달을 적군에게 패하여 적군의 칼에 쫓길 일이든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전염병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천사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이든지”입니다. 다윗은 세 번째를 선택합니다. 그 결과 전염병으로 14절 보면 칠만 명의 백성들이 죽습니다. 다윗의 잘못으로 무고한 백성들이 이렇게 많이 죽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다윗도 17절을 보면 자신이 잘못했는데 많은 백성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 차라리 나와 내 아버지 집을 치시고 백성들에게는 재앙을 내리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두 번째 징계를 선택하는 것이 맞아 보입니다. 자신이 잘못했으니 자신이 적군의 칼에 쫓기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왕이 석 달간 적에게 쫓기는 상황은 전쟁의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적들이 다윗 왕만 잡으려 할까요? 수많은 인명 피해가 있을 것입니다. 삼 년의 기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손에 맡깁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계를 선택합니다. 왜냐하면 13절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멸하러 천사를 보내셨다가 15절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하십니다. 여기 “뉘우치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셨다는 말이 아니라 다윗의 고백처럼 긍휼을 베푸셔서 뜻을 돌이키셨다는 의미입니다. 다윗과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구약에 하나님의 심판이 많이 나오기에 하나님은 무서운 심판의 하나님으로 생각하는데, 그 아래 크게 흐르는 물줄기는 바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천사가 서 있던 장소가 15절 하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입니다. 이곳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곳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다윗이 짓고자 소망했던 성전이 지어지는 장소가 됩니다. 그래서 역대기 저자는 다윗의 실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다윗이 실패한 자리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성전이 지어지는 장소가 되게 하십니다. 소망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끝이라고 생각했던 자리에서 하나님을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고 새로운 꿈을 꾸게 하시며 소망의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늘 자랑과 교만의 위험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니 늘 말씀으로 깨어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죄에 대해 징계하시지만 반드시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 바라보며 다시 일어나 소망으로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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