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11절)
요한은 계시록을 쓰게 된 동기를 설명합니다. 9절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라고 합니다. 신앙으로 인해 고난 당하는 성도들과 같은 형제요, 같은 고난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전하므로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습니다. 극심한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누군가 조언을 하면 “당신은 이런 고난을 당해봤어?”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아무리 좋은 말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요한은 같은 고난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고난 당하는 성도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설명합니다.
우리는 보통 예수 잘 믿으면 복 받는다고 말하는데 요한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9절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합니다. “나라”를 중심으로 “환난”과 “참음”이 나열됩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나라와 다른 하나님 나라, 정의와 공의가 중심인 예수님의 나라를 이루려면 반드시 환난이 있습니다. 세상이 가만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참고 인내할 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환난을 만나고 참고 있다면 잘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런 고난이나 문제가 없다면 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렇게 환난 가운데 있는 요한, 또한 많은 성도들이 박해로 인해서 생과 사의 기로에 서 있을 때 요한의 마음에 질문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 알고 계시는지, 역사하실 것인지 부르짖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응답이 임합니다. 10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라고 하는데, 주일에 예배하면서 그렇게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그때 성령에 감동되어 음성을 듣게 됩니다.
10절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입니다. 큰 나팔 소리가 울릴 때는 전쟁에서 왕이 등장할 때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이 큰 음성은 예수님의 음성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승리하신 왕으로 전쟁에 등장하시는 겁니다. 세상 왕의 압제 아래 신음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미 승리하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등장하셔서 반드시 성도들에게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그 내용을 두루마리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하십니다. 계시록에는 숫자가 많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7’이 자주 등장합니다. 완전수입니다. 일곱교회에 보낸다는 것은 모든 교회가 읽고 듣고 붙잡아야 할 말씀입니다.
요한은 뒤에서 들리는 큰 음성이 누구의 목소리인지를 알아보려고 몸을 돌이켰는데, “일곱 금 촛대”를 보게 됩니다. 계시록에는 이처럼 상징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20절 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일곱 교회라고 하면 되지 왜 혼란스럽게 촛대를 보여주시는 것일까요? 앞으로 계시록에 많은 환상과 상징들이 등장할 것인데 그렇게 보여주는 것이 더 명확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곱 교회를 보여준다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데, 교회를 촛대로 보여주면 선명합니다. 성막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창문이 없다는 겁니다. 빛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캄캄합니다. 유일하게 빛을 비추는 것이 바로 가지가 일곱으로 뻗어 있는 금촛대입니다. 교회가 촛대라는 것은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어둔 세상을 비추는 유일한 공동체입니다. 당시 교회는 핍박으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는 어둔 세상을 비추는 빛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자 같은 이”이신 예수님께서 촛대 사이에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와 함께 하시며 교회를 지키고 계십니다. 그러니 누구도 건들 수 없습니다.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16절)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13절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제사장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과 성도 사이를 중보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14절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흰 머리는 지혜를 상징합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불꽃 같은 눈은 두 가지 역할을 합니다. 하나는 고난 받는 성도들을 불꽃 같은 눈으로 돌아보십니다. 하지만 교회를 조롱하고 박해하는 자들은 불꽃 같은 눈으로 기억하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16절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일곱 별”은 20절 하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입니다. 능력의 오른 손으로 교회의 사자들을 붙잡고 계십니다. 좌우에 날선 검 역시 말씀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심판의 검이 될 것입니다. 말씀이 기준입니다. 끝으로 예수님의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습니다. 성도들이 어떤 어둠과 절망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이 예수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하십니다. 이 예수님으로 성도들의 얼굴 역시 해가 힘있게 비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만난 후 요한은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됩니다. 주님의 영광 앞에 죄인된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런 요한에게 예수님은 오른손을 얹으시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17-18절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처음과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아시고 주관하십니다.
특히 “살아 있는 자”이십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이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고 하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 살아계신 주님이십니다. 또한 이것이 성도들의 정체성입니다. 죽지만 살아납니다. 세세토록 살아 있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박해 앞에 신앙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오히려 순교의 길이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반대로 목숨을 위해 신앙을 저버린다면 그것이 사망의 길입니다. 삶과 죽음의 열쇠를 주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이 영광의 주님을 알고, 이 주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하심을 알고, 성도들이 믿음을 지켰을 때 주어는 결과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압시다. 승리의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삶에 해가 힘있게 비치게 하십니다.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살아갈 때 영원한 생명으로 채워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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