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2절)
9장에는 여섯째 나팔 재앙까지 임했습니다. 이로 인해 자연의 1/3과 사람 1/3이 심판을 당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남아 있는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귀신과 우상을 숭배하고 죄악 가운데 행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세상 속에서 교회와 성도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10-11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힘센 천사가 등장합니다. 천사의 모습이 1절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라고 합니다. 구름을 입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머리에 무지개가 있다는 것은 4:3절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무지개가 둘린 것과 같습니다. 창9장의 무지개 언약을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보시고 반드시 언약을 지키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얼굴은 해와 같고 발은 불기둥 같다고 하는데 1:15-16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모습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와 흡사합니다. 이런 표현은 힘있게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천사의 모습입니다.
2절 보면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가 들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5장에서 하나님의 오른 손에 들린 두루마리를 살펴보았습니다. 일곱 인으로 봉인되었던 두루마리의 인봉이 하나씩 떼지면서 인 재앙과 나팔 재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작은 두루마리는 5장의 두루마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고, 5장의 두루마리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에 대한 것이라면, 본문은 작은 두루마리는 그런 세상 속에서 성도들이 전해야 할 복음의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대조되는 내용이 2절의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와 4절 하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입니다. 한마디로 열려 있는 책이 있고, 인봉되어야 할 닫힌 말씀이 있습니다. 3절은 작은 두루마리를 든 천사가 큰 소리로 외칠 때 일곱 우레가 소리를 내어 말을 했다고 하는데 이 일곱 우레 소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앞으로 되어질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이 선포되자 요한이 기록하려고 하는데 이때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마지막 때까지 알려지지 않아야 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주님 재림과 관련된 날과 시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세세토록 살아계신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은 무한합니다. 그것을 사람이 다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꼭 필요한 내용은 하나님께서 기록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기록된 말씀, 펴서 보여주시는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면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 삶에 답답한 문제들을 만납니다. 언제 어떻게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실지 알지 못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이런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은 분명하게 강조하십니다. 6절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작정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주권자되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지체하지 않고 반드시 이루십니다. 7절도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고 합니다. 우리 삶과 가정, 일터와 자녀들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반드시 이루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10절)
다시 2절로 돌아가면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천사가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본문은 세 번 반복합니다(5,8). 계시록에서 바다와 땅은 악을 상징합니다. 성도들의 눈에 세상이 승리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세상, 바다와 땅을 천사가 밟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하늘의 음성이 요한에게 말합니다. 8절 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그래서 요한이 천사에게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고 하니 이렇게 말합니다. 9절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천사의 말대로 요한이 작은 두루마리를 먹으니 입에는 꿀같이 달지만 배에서는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묵상할 때 은혜와 감동을 받습니다. 힘을 얻고 소망을 가집니다. 이것이 입에 달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살아내려 할 때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것이 배에서는 쓰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이 말씀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11절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고 합니다. 이 구절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여기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은 세상을 상징합니다. 9장과 연결해서 보면 하나님의 진노에도 회개하지 않는 완악한 세상입니다. 여전히 성도들을 핍박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을 향해 성도들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요?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고 합니다. 다시 복음을 전하라는 의미입니다. 절대 회개하지 않고 믿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지만 다시 복음을 들고 나가 전하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1/4, 1/3로 강도를 더해가는 것이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과정에서 한 사람이라도 돌이켜 생명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사명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말씀을 달게 먹어야 합니다. 묵상하며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말씀의 은혜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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