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18:20-19:10절/할렐루야(25.07.29)

2025.07.29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20절)

​큰 성 바벨론을 따르던 땅의 왕들과 땅의 상인들 그리고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그들은 음행하고 사치하며 치부했습니다. 울며 애통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의 심판은 바꿔 말하면 큰 성 바벨론의 지배 아래서 고통 당하던 성도들에게는 승리의 날입니다. 그래서 20절은 성도들과 사도들, 선지자들에게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 인내하는 성도들을 주목하셨습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계셨습니다. 24절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고 하시면서 이에 대한 보응으로 땅의 사람들에게 심판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이 모르시는 것 같았지만 다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이 이처럼 분명하게 나타날 때가 반드시 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성도들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벨론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확실한지를 큰 맷돌을 바다에 던지는 장면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결코 다시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18:21-24절까지 “결코 다시”라는 말이 6번이나 반복됩니다. 심판으로 인해 결코 다시 들리지 않는 소리, 보이지 않을 모습들이 있습니다.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기쁨의 시간이 끝이 났다는 겁니다. 또한 세공업자가 결코 다시 보이지 않습니다.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로(12절) 돈을 모으고 사치했는데 그럴 수 없습니다. 모든 경제가 무너집니다.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들리지 않습니다. 풍요의 시대가 가고 핍절의 시대가 옵니다. 등불 빛도 결코 다시 비치지 않습니다. 저녁이 되면 등불 빛을 켜는 것이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인데 그런 일상이 무너집니다. 가장 슬픈 일은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들리지 않을 것이라 합니다. 결혼의 기쁨이 없어지고 뿐만 아니라 미래가 절망입니다.

왜 이런 심판을 받게 되었는지를 다시 설명합니다. 23절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라고 합니다. 이들은 스스로 왕이 되어 교만하며 하나님께 도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존귀한 성도들을 박해하였습니다. 또한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우상을 숭배하도록 하였습니다. 세상 정신을 따라 살게 하였습니다. 멸망의 길로 인도한 것입니다. 그러니 심판이 마땅합니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6절)

​그렇다면 큰 성 바벨론과 추종자들의 심판으로 결코 다시 기쁜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이때 성도들은 어떤 소리, 어떤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인가? 그것이 19장의 내용입니다. “할렐루야”를 외쳐 부릅니다. 19:1절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1-6절까지 “할렐루야”가 4번 반복됩니다. “할렐루야”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의미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영광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글로 기록된 본문 속에서 할렐루야 찬양하는 승리한 성도들의 감격과 기쁨을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참되고 의로운 심판으로 큰 음녀인 바벨론을 심판하시고 피 흘린 성도들에게 승리를 주셨으니 그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6절은 이 찬양 소리가 얼마나 큰지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라고 합니다. 우렛소리와 같은 찬양입니다.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대한 감격입니다. 이 찬양에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동참합니다.

이 시대 우리가 회복해야 할 찬양이 바로 “할렐루야”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통치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승리와 영광의 날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께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으로 “할렐루야” 찬양으로 영광돌려야 합니다. 우리가 주일에 모여 예배할 때마다 이 은혜와 감격을 가지고 할렐루야 소리 높여 하나님께 경배합시다.

헨델이 작곡한 ‘메시아’ 중에 그 유명한 ‘할렐루야’라는 곡이 있습니다. 메시아를 작곡하기 전 1741년 헨델은 파산과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거기다 중풍과 류마티스 등으로 자신이 음악가로서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 절망의 시기에 한 단체로부터 자선 음악회에서 연주할 곡을 써 달라는 의뢰를 받고 곡을 쓰게 됩니다. 놀랍게도 260쪽에 해당하는 악보를 단 24일 만에 완성합니다. 헨델은 메시아 완성 직후 “나는 내 앞에서 하늘을 보았고 또한 위대한 하나님을 분명히 보았다.”라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악보 끝에 SDG라고 기록을 했는데 이 말은 라틴어로 ‘Soli Deo Glroria’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의 줄임말입니다.

1742년 영국에서 초연될 당시 영국 국왕이 참석을 했는데 ‘할렐루야’가 연주 될 때 그 웅장함에 감동되어 앉아 있을 수가 없어 기립을 한 후로 ‘할렐루야’가 연주될 때는 모든 청중이 기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웅장한 헨델의 ‘할렐루야’가 바로 오늘 본문을 근거로 작곡이 되었다고 합니다. 헨델은 본문 속에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그로 인해서 할렐루야 목소리 높여 찬양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의 기쁨이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바로 7절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입니다. 어린양이신 예수님과의 결혼입니다. 예수님이 신랑시신데, 그렇다면 신부는 바로 교회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아내를 위해 예수님은 어린양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어린양의 신부가 얼마나 존귀한 자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신부가 입는 드레스는 8절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하는데 이는 성도들의 올바른 삶이라고 합니다. 구원받았다고 우리가 함부로 살 것이 아닌 더욱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룩한 어린양 예수님의 신부로서 매일 깨끗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여전히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맡깁시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통치하십니다. 성도의 삶은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든 할렐루야 찬양으로 하나님을 경배합시다. 우리는 예수님의 거룩한 신부입니다. 올바른 삶으로 깨끗한 세마포를 준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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