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16절)
7-8장이 스가랴 전반부 마지막 내용입니다. 그 시작은 금식에 대한 질문입니다. 성전이 건축되고 있는데 계속 금식을 해야 하는지를 물었고 이에 대한 대답으로 하나님은 7장에서는 과거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런데 8장에서는 그런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회복을 금식에 대한 질문과 연결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격노하셨고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셨습니다. 여기 “뜻하다”의 원어가 ‘자맘’인데요 하나님의 확고한 의지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성전에 무너졌습니다. 그것을 슬퍼해서 금식하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15절에 “이제 내가 다시”라고 말씀하시면서 과거에 재앙 내리시고 뜻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셨다고 합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작정이기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회복하십니다.
그렇다면 궁금한 것은 왜 하나님께서 이제는 은혜를 베푸시는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완전히 변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과 같은 말씀을 계속하시는 것을 보면, 여전히 이스라엘은 과거 조상들의 모습을 따라갈 위험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와 상관없이 은혜를 베푸시기로 작정하십니다. 이유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잘못에 대한 70년이라는 징계의 시간을 거쳤기에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내용이 16절입니다.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고 합니다. 먼저 사랑하시고, 먼저 은혜를 베푸신 후, 은혜에 합당한 행동을 요구하십니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행위가 먼저가 아니고 은혜가 먼저입니다. 그리고 은혜 받은 자 답게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러니 그 큰 사랑을 알고, 은혜를 기억하며 이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은혜를 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6-17절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이미 7:9-10절에 나왔던 말씀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않았던 내용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대단한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신비한 능력을 원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대신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고,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하며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않는 겁니다. “이웃”과 “서로”라는 단어를 통해 하나님은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원하십니다. 서로 해하지 않고 사랑하며 은혜를 나누길 원하십니다.
또한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는 의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맹세에 사용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은 바른 관계입니다. 위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옆으로 내 곁의 사람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반드시 “진리”가 자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8장은 “진리”를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3,8,16,19). 그렇습니다. 진리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21절)
금식에 대한 질문에 답을 주십니다. 7장에는 5월과 7월, 두 번 금식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본문 19절을 보면 네 번의 금식이 나옵니다. 4월, 5월, 7월, 10월입니다. 모두 예루살렘과 성전의 무너짐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슬픔의 금식 절기가 변하여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될 것이라 하십니다. 무너졌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회복하시고 다시 세우십니다. 성전도, 예루살렘도 그리고 성벽도 세우실 것입니다. 거리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도시가 될 것입니다. “기쁨, 즐거움, 희락”이라는 같은 의미의 단어를 세 번 반복하시면서 반드시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이 19절 하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고 하십니다. 그런 기쁨이 회복되면 이제는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진리와 화평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회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회복된 이스라엘의 모습을 통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많은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 것입니다. 21절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서로 예루살렘으로 먼저 가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를 찾고 은혜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이 내용이 22절에도 반복됩니다. 과거 주변 나라들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금식의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스라엘이 만난 하나님을 만나고, 이스라엘이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자 예루살렘을 찾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모습은 과거 하나님께서 처음 선택하셨던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출19:6절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장 나라는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복됨을 보고 주변 나라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요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며, 그들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가 아닌 세상 나라를 닮아 살았습니다. 그 결과가 금식이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제사장 나라로 회복시켜주십니다. 많은 주변 나라들이 이스라엘이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 예루살렘을 찾게 될 것입니다.
23절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고, 이스라엘과 함께 가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이 시대 우리 신앙생활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먼저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 사랑을 알고, 진리의 말씀 안에서 위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 옆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쁨을 누리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함께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그런 신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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