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1절)
데살로니가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 이제 시작하는 교회이지만 바울의 가르침을 받은 대로, 복음 중심으로 세워지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에 본이 되는 교회입니다. 하지만 좋은 교회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시작은 열정으로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방향을 잃고 열정이 식어 세상과 다르지 않은 공동체를 이루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권면합니다.
1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바울은 우리 인생의 목적, 신앙의 목적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입니다. 바울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본을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성도는 모두가 자신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는 그런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을 창조주와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섬기며 하나님의 기쁨이 될 때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은 자신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 살아가지만 참된 기쁨과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우리가 기쁨을 누립니다.
또한 우리가 받은 은혜가 크고 놀랍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받아 새로운 신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큰 사랑입니다. 전부를 주신 사랑입니다. 이 은혜와 사랑을 받은 자로서 마땅히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소요리문답 제1문은 “사람의 제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 그리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삶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 복된 삶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살았고,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바울은 1절 하 “더욱 많이 힘쓰라”, 10절 하 “더욱 그렇게 행하고”라고 하면서 잘 하고 있는 부분 더 잘 감당하도록 격려합니다. 자칫 우리는 열심을 내다가 멈추고 안주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 이유 때문입니다. 상처를 받기도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할 이유가 있는지 갈등하고, 혹은 대중 속에 묻혀 쉽고 편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멈추고 안주하면 우리는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더 소중한 것을 잃게 됩니다. 바울의 권면 “더 많이 힘쓰라”를 기억해야 합니다. 장애물을 넘고, 안주하려는 마음을 이기고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의 수고 이상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함께 나누는 일을 강조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더욱 힘써야 합니다. 하지 않을 이유를 찾지 말고, 어떻게 더 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3절)
3절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합니다. 보통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많은 봉사와 헌금, 열심히라고 생각하는데 바울은 “거룩”을 강조합니다. 거룩함 중에서도 음란을 버리고 세상처럼 잘못된 욕망을 추구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를 위해 아내를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대하라고 합니다. 여기 ‘아내’로 번역된 단어는 ‘몸 혹은 그릇’으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몸을 거룩하게 통제하라”는 의미도 됩니다.
이런 강조는 당시 문화가 성적으로 문란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욕망 추구를 악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 시대에 이방인과 다른 삶을 살아가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음란의 문제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기준, 방향과 달라야 함을 말해줍니다. 음란은 형제를 해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가정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악에 대해 징벌하시고 심판하십니다.
다시 한번 거룩을 강조하면서 8절 하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고 합니다. 우리 안에 거룩하신 성령님께서 거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전입니다. 그런 성도가 어떻게 음란과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시대 역시 성적으로 혼란한 시대입니다. 성도는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존재임을 기억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가정을 세워가야 합니다.
형제 사랑에 대해서는 너무 잘 하고 있다고 격려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내용은 9절 하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입니다. 1절도 배운대로 행하고, 사랑도 가르침을 받아 행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행동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이들의 사랑이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해 사랑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1:3절에서 “사랑의 수고”가 있다고 했는데 아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 누군가 방문하면 최선을 다해 섬긴 듯합니다.
끝으로 11절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조용히 자기 일을 하라”는 의미는 시끄럽게 다른 사람들의 일에 참견하지 말라는 겁니다. 자신의 일은 잘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 일에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덕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너희 손을 일하기를 힘쓰라”고 하는데 게을러 일하지 않아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정말 도와야 할 사람을 돕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성도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이런 모습이 외인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게 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 합시다.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이 됩시다. 서로 사랑합시다. 묵묵히 우리 일을 잘 감당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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