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27:1-28:15절/바른 길을 걸었으므로(25.10.17)

2025.10.17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2절)

​웃시야에 이어 요담이 25세에 왕이 되어 16년을 통치합니다. 요담에 대한 평가는 2절입니다.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여전히 부패하였더라” 웃시야의 전반기 통치처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성전에는 들어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버지 웃시야가 하나님의 기준을 어기고 함부로 분향하려 하다 나병이 걸려 격리된 삶을 지켜보았던 요담은 성전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성전을 두려워해서 출입을 하지 않았고 그것 때문에 백성들이 부패했다고 보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성전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성전 안에서의 봉사는 제사장의 역할이기에 제사장에게 맡기고 아버지처럼 정해진 기준을 넘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는 겁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부패는 열왕기를 보면 요담이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여전히 산당에서의 우상숭배가 진행되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견해가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요담은 계속해서 바른 길을 걸은 왕으로 소개되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 형통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담의 업적 가운데 건축이 반복됩니다(3-4절).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는 요담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한 5절은 “암몬 자손의 왕과 더불어 싸워 그들을 이겼더니” 그 결과 암몬이 여러 해 조공을 바칩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암몬은 26:8절에서 이미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쳤다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웃시야가 교만해서 나병에 걸린 사이 암몬이 유다의 손에서 벗어났고 요담이 다시 승리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요담의 삶을 6절 “요담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고 합니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바른 길을 걸었더니 하나님께서 점점 강하게 하셨습니다. 28장에 나오는 요담의 아들인 아하스는 스스로 강하고 부요하기 위해 우상을 숭배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점점 약해지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강해지려고 우상숭배하거나 내가 앞서지 않고 먼저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걸을 때 하나님은 우리로 점점 강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걸어야 할 바른 길은 본문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요담은 앞선 왕들처럼 통치 후반에 변질되지 않고 바른 길을 걷습니다. 요담은 다윗 성에 장사됩니다. 16년의 통치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바른 삶을 살았습니다.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보다 어떻게 살았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내 말을 듣고”(28:11절)

​이어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됩니다. 그는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걷습니다. 2절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본받아야 할 아버지는 본받지 않고 본받지 말아야 할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따라 바알을 만들어 섬깁니다. 그만큼 강하고 부하려는 욕망이 컸음을 알게 됩니다. 심지어 힌놈의 골짜기에서 자녀들을 불살라 제물로 드리는 일까지 행합니다. 몰렉이라는 우상을 숭배한 것입니다. 온 나라 곳곳에 우상숭배가 만연하도록 했습니다.

5절의 시작은 “그러므로”입니다. 27:6절은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로 했는데, 아하스는 악한 길을 걸으므로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갑니다. 5절 “여호와께서 그를 아람 왕의 손에 넘기시매” 하나님이 이방인의 손에 넘기십니다. 많은 백성이 포로로 끌려갑니다. 또한 이스라엘 왕 베가의 손에 넘기십니다. 아이러니 한 것이 이스라엘 왕들의 우상을 섬겼는데(2절) 이스라엘 왕에게 공격을 받습니다. 이 전쟁으로 하루 아침에 군사 12만 명이 죽고 유력한 지도자들도 죽습니다. 또한 20만 명의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사마리아로 향합니다. 이들을 노예로 삼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북이스라엘에 오뎃이라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돌아오는 군대를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의 잘못 때문에 깨닫게 하시려고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셨는데, 과거 동족이었던 백성들을 노예로 삼기 위해 포로로 끌고 오는 일은 잘못된 일이라는 겁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박했으니 사로잡은 유다 포로들을 놓아주라고 합니다.

우상숭배가 만연하고 하나님을 외면한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하는 오뎃 선지자, 승리한 군사들에게 전리품을 포기하라는 것은 위험한 선포인데 오뎃은 하나님의 뜻은 담대히 선포합니다. 놀라운 것은 북이스라엘 군사들이 선지자의 명령에 순종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남유다 요아스 왕 때 하나님께서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통해서 요아스의 우상숭배 잘못을 지적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때 요아스는 하나님의 사람인 스가랴를 죽입니다(24:20-22절). 또한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도 전쟁 승리 후 우상 숭배할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 돌아오라고 할 때 입을 다물라며 위협했습니다(25:15-16절). 그런데 놀랍게도 북이스라엘 군사들은 오뎃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이를 통해 역대기 저자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임을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북이스라엘 군사들은 15절 “이 위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 일어나서 포로를 맞고 노략하여 온 것 중에서 옷을 가져다가 벗은 자들에게 입히며 신을 신기며 먹이고 마시게 하며 기름을 바르고 그 약한 자들은 모두 나귀에 태워 데리고 종려나무 성 여리고에 이르러 그의 형제에게 돌려준 후에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고 합니다. 포로들은 선대하고 돌려보냅니다.

매 순간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걷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점점 강하고 형통하게 하십니다. 우리 삶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만 갈망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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