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3절)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학개 선지자에게 임합니다. 이때가 1절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다리오 왕 2년(BC520년) 6월1일에 학개 선지자 통해 오랫 동안 멈추었던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라고 하셨습니다(1:1절). 이 말씀을 듣고 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시작한 때가 1:15절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이십사일”입니다. 그리고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난 7월 21일에 하나님은 다시 말씀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성전 건축을 시작하고 백성들 사이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주신 7월 21일은 초막절 절기를 지키는 때입니다. 7월은 유대인 달력으로 한해를 시작하는 달이고 15-21일에는 초막절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초막절 절기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초막절은 에스라 3장에서도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7월에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여 지켰던 절기입니다. 말 그대로 ‘초막’, 즉 풀로 만든 텐트에서 생활하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인데요, 출애굽하고 광야 40년을 초막에서 생활하였습니다. 황량하고 위험이 가득한 광야에서 40년을 지냈다는 것을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5절도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과 머무시며 동행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언약 백성으로 여기시고 성령으로 함께 하십니다. 과거에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신 것처럼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전을 건축하면서 발생 된 문제가 무엇이기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3절에서 하나님은 질문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전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본 사람을 찾으십니다. 아마 포로에서 귀환한 소수의 나이 많은 사람들이 과거 솔로몬 성전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물으신 것은 지금 짓고 있는 스룹바벨 성전이 이전 성전과 비교하면 작고 초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물음이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입니다.
이전 성전의 영광을 본 사람들의 눈에 지금 성전은 보잘것없어 보였습니다. 에스라3:12절에서도 성전의 기초가 놓일 때 첫 성전을 보았던 나이 많은 족장들이 대성통곡을 했는데 그 이유가 감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전의 규모를 비교하면서 슬픔에 잠겼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말이 백성들 사이에 퍼져가면서 많은 백성들의 마음에 기대가 사라지고 실망감이 자리 잡았습니다. 총독인 스룹바벨과 대제사장인 여호수아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외부 적들의 방해로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다면 이제는 내부의 절망으로 멈출 상황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백성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전의 규모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솔로몬 성전 이전에 하나님은 광야에서 성막이라는 이동식 텐트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습니다. 솔로몬의 고백처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용납할 수 없는 하나님이 작은 성막에 기쁨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백성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는 규모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중요합니다. 어쩌면 백성들은 세상의 가치관으로 이전 성전과 현재 성전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비교의식이 있지 않습니까? 교회 건물의 크기로, 사람들의 많고 적음으로, 뿐만 아니라 비록 연약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성도의 영광을 기억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 우리 자신을 비교하면서 실망하고 패배 의식에 빠지지 않습니까? 비교의식을 버리고 영광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4절)
이런 문제 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4절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한마디로 “힘을 내라”고 하십니다. 1:14절에서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수아의 마음과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힘을 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4절 하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어젠 본문에도 ‘만군의 여호와’가 반복되었는데, 오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4,6,7,8,9). 능력의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이니 말씀하신대로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확신하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 앞에 멈추지 말고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힘을 내어 전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백성들의 눈에 보잘것없어 보이는 스룹바벨 성전을 어떻게 회복시키실까요? 6-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진동시키시고, 모든 나라를 진동시키시겠다고 하십니다. 한마디로 흔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흔들면 아무리 대제국이라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붙잡으시면 아무리 작은 나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온 세상과 나라는 흔드시는가? 바로 하나님의 성전에 보배를 충만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과거 솔로몬 성전에는 나라가 부강하므로 많은 보물들로 가득했습니다. 그것이 성전의 영광을 상징했습니다. 하나님은 스룹바벨 성전도 그렇게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8절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성전을 채우실 것입니다. 그래서 9절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고 하십니다. 또한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고 하십니다.
혹시 내 인생, 우리 가정, 우리 공동체가 보잘것없다고 생각이 되시나요? 만군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게 하실 것입니다. 평강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굳세게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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