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1:1-11절/종의 기도를 들으소서(25.11.20)

2025.11.20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4절)

​에스라 묵상 후 학개서를 마치고 느헤미야서를 묵상합니다. 원래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한 권의 책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전체적으로 이렇게 진행됩니다. 에스라서 전반부는 1차 귀환과 성전 재건을, 후반부는 2차 귀환과 공동체 신앙 재건을, 그리고 느헤미야서는 3차 귀환과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관한 내용입니다. 즉 다시 세우는 재건에 관한 내용입니다.

느헤미야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위로하시다”입니다. 1절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라고 하면서 느헤미야의 활동 시기를 알려줍니다. 이때는 BC444년으로 에스라 2차 귀환 후 14년의 시간이 지난 시점입니다. 수산궁은 페르시아 왕들이 계절마다 돌아가며 머무는 별장으로 겨울 별장입니다. 느헤미야가 왕궁에 있는 이유는 11절 하 “왕의 술 관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왕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많았기에 왕의 음식과 음료를 담당하는 자들은 신임을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또한 왕의 가장 가까이에서 국정도 의논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대통령 비서실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가진 자리입니다.

유대인으로 포로 생활하던 느헤미야가 그런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성전이 무너진 때를 기준으로 한다면 지금은 약140년 정도가 흘렀습니다. 그렇다면 아마 할아버지가 포로로 끌려와서 아버지를 낳고, 느헤미야가 태어났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느헤미야는 이방 땅에서 태어나 고국 땅을 밟아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 느헤미야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예루살렘의 형편과 그곳 백성들의 삶이었습니다. 마침 형제 하나니가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돌아왔기에 그곳 형편을 물어보니 3절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고 합니다. 지금 상황은 1차 귀환과 2차 귀환이 이루어졌고 이미 성전도 완공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성벽과 성문들이 허물어지고 불에 타서 예루살렘 백성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주변 기득권 세력들이 함부로 백성들을 능욕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예루살렘 형편을 들은 느헤미야는 4절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기도의 모습이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백성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반복되는 단어가 “기도”입니다. 사실 느헤미야는 현재 비록 이방 땅이지만 편안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고국의 소식이 안타깝지만 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몇 번 기도해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이 문제를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로 붙잡고 기도하며, 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시작됩니다. 어떤 문제를 들었을 때 판단하고 정죄하기가 쉽습니다. 냉정한 분석에 근거해서 해결책을 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문제를 나의 문제로 끌어안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됩니다. 기도가 먼저입니다.

●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11절)

​4-11절까지가 느헤미야 기도 내용입니다. 여기에 느헤미야의 신앙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어떤 언약 관계인지를 압니다. 그리고 회복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5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라고 합니다. 학개서에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느헤미야서는 “하늘의 하나님”이 반복됩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느헤미야는 비록 대제국 페르시아 왕의 관원으로 있지만 하나님께서 진정한 왕이심을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그 하나님은 크고 두려우신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어 느헤미야는 에스라가 그랬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자신의 죄악으로 자복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를 지키지 않은 것을 회개합니다. 그렇습니다. 무조건 문제만 해결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어디서부터 회복되어야 하는지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말씀 안에서 발견하고 기도합니다. 기도해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기도하다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대로가 아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간구하게 됩니다.

이어 하나님의 약속을 부여잡고 회복을 간구합니다. 9절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던 느헤미야의 기도가 11절 끝에서는 특이한 간구를 합니다.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여기 “이 사람”은 아닥사스다 왕입니다. 왜 갑자기 아닥사스다 왕에게 은혜를 입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일까요? 느헤미야는 긴 시간 기도했습니다. 1:1절 기슬르월에 시작해서 2:1절 니산월까지 약 4개월간 기도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형편으로 시작된 기도가 계속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자신이 고국으로 돌아가 그 일을 감당해야 한다는 부르심입니다. 고국 백성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알고 눈물로 기도하던 느헤미야에게 하나님께서 새로운 꿈을 주신 겁니다.

그런데 이 일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왕의 술관원이 갑자기 고국으로 돌아가 성벽을 재건하겠다고 했는데 왕이 싫어하면 그것은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에스더서를 보면 에스더가 왕비임에도 왕 앞에 함부로 나가지 못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지금 느헤미야의 사명은 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지 않는다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느헤미야는 거절하거나 핑계하지 않습니다. 받아들이고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 바로 왕에게 은혜를 입게하셔서 허락을 받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울며 기도하고 있습니까? 누군가의 아픔과 문제, 공동체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끌어안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그 가운데 내가 해야 바른 길을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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