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46:1-10절/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25.12.17)

2025.12.17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1절)

​지금까지 ‘다윗의 시’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어지는 146-150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는 보통 ‘할렐루야 시편’이라고 부르는 내용입니다. ‘할렐루야’는 ‘할렐루’(찬양하다, 영광스럽게 하다)와 ‘야’(여호와)가 합쳐진 히브리어로 “여호와를 찬양하라”입니다.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할렐루야’를 외치고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벅찬 감격으로, 큰 소리로 ‘할렐루야’를 외치고 있습니다.

1절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에서 시인은 우리 찬양의 대상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선포합니다. 세상에는 찬양의 대상이 참 많습니다. 사람이 찬양받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을 찬양하기도 합니다. 자연이 찬양을 받기도하고, 요즘은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 과학기술이 찬양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찬양해야 할 분은 오직,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해야 할까요? 2절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생전에” 찬양하겠다는 의미는 우리 인생의 끝이 있다는 겁니다. 찬양하고 싶어도 찬양할 수 없는 때가 옵니다. 그러니 삶이 주어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일은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창조의 목적을 이루는 삶이요(사43:21절), 가장 행복한 삶입니다. 시인은 이런 하나님 향한 찬양이 평생에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마치 어제 본문 시145:2절의 다윗의 고백과 같습니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다윗은 “날마다 … 영원히” 하나님을 송축하겠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들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다보니 지금 필요한 것에 집중해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큰 은혜를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기억하고 감사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이런 신앙이 부족한 현실을 믿음으로 넉넉히 이기는 힘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인이 깨달은 것은 사람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대단한 힘과 권세를 가지고 있어도 사람은 도울 힘이 없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4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인간을 표현한 단어가 “끊어지면, 돌아가서, 소멸하리로다”입니다. 대단한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때 날아가던 새도 떨어뜨릴 것 같은 권세를 부르던 자들이 이제는 세상에 사라지고 없습니다. 점점 기억이 희미해집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헛된 힘을 가지겠다고, 영원하지 않은 부와 명예를 가져보겠다고 거기에 목숨을 걸고 살아간다면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10절)

​그래서 시인은 5절에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합니다. 능력의 하나님을 자기 도움으로 삼고 영원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가 복된 인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도움되시는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합니다. 성경 인물 중 가장 반전의 인생을 산 사람이 야곱입니다.

야곱의 이름의 뜻은 ‘뒤꿈치를 잡다, 속여 넘기는 자’입니다. 장자의 축복을 받기 위해 태어나면서부터 형의 발 뒤꿈치를 잡고 먼저 태어나려 했던 인물입니다. 자신을 의지하고 사람을 속여가면서 세상의 복을 누리려 하였습니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은 연단의 과정을 통해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어가십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십니다. 결정적인 사건이 얍복강에서의 천사와의 씨름입니다. 하나님과 씨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십니다. 자기 힘으로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씨름에서 져주십니다.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십니다. 의미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입니다. 야곱이 앞으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그의 정체성이 이제는 속이는 자, 인간의 술수로 살아가는 자가 아닌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게 하신 겁니다. 이 야곱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시고 신실하심으로 지키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주관하십니다. 7-9절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의 특징이 묘사됩니다. 7절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하나님의 시선은 부한 자, 높은 자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억눌린 자들, 주린 자들, 갇힌 자들에게 있습니다. 당시 가장 약자들인 나그네와 고와, 과부에게 눈길을 향하시고 붙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 속에 8절 끝은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9절 하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라고 하며 의인과 악인을 대조합니다. 그렇다면 의인은 하나님께서 만드시길 원하는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 하나님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 눈길을 향하고 마음을 두고 주린 자들을 채우며 억눌리고 갇힌 자들을 자유롭게 하는 자들입니다. 약자들을 붙들어주고 일으켜 세워주는 자들입니다. 그런 의인들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반면 악인들은 자신이 주인되어 살아가며 누군가를 억압하고 빼앗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결론은 멸망이 될 것입니다.

시인은 이렇게 선포하며 마칩니다. 10절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영원히 다스리시고 대대로 통치하십니다. 사람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이것이 진실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삶이 가장 복된 삶입니다. 하나님을 평생 찬양하며 사는 삶이 행복한 삶입니다.

0개의 댓글

댓글 제출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