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15절)
인간은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처럼 되려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하나님의 왕권에 대한 도전입니다. 심각한 죄악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가장 먼저 뱀에게 내리십니다. 14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매일성경은 “배로 다니고 흙을 먹는다”를 싸움에 패하여 굴욕적인 처지에 놓이는 것을 표현하는 관용구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즉 하나님과 같이 높아질 수 있다고 유혹했는데 결과는 땅을 기어다니는 가장 비천한 신세로 전락합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높아지려할 때 가장 낮은 인생이 됩니다.
그런데 뱀에 대한 심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후손에 대해서까지 이어집니다.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원수가 될 것이요,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뱀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뱀의 유혹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자리를 탐하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속삭일 것입니다.
그런 사탄의 세력을 하나님께서 완전히 박살을 내시는데, 바로 여자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을 선동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고 죽게 합니다. 이것은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 사탄의 세력을 완전히 부수시고 승리하십니다. 그리고 3일 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십니다. 이 내용이 복음의 핵심인데, 놀라운 것은 범죄 후 이런 회복과 소망의 메시지가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진노 중에서도 자기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긍휼을 베푸십니다.
여자에게 주어지는 심판은 16절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임신과 해산의 고통입니다.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축복이 고통이 됩니다. 죄의 결과입니다.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는 의미는 다양한 해석들이 있지만 지배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비슷한 구절이 바로 이어지는 4:7절 하나님께서 범죄한 가인에게 하시는 말씀에도 나옵니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죄에 대한 지배권을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범죄 이전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하나님처럼 되어 통치권을 행사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남편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주어지는 심판은 인간이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높아지려하자 철저히 낮아지는 겁니다. 뱀도 배로 다니고 흙을 먹고, 여자도 지배를 받고, 남자 역시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아담에게 주어진 심판이 가장 깁니다. 선악과를 먼저 먹은 것은 여자이지만 아담은 인류의 대표로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문제는 17절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입니다. 아내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겁니다. 아담 역시 축복으로 주신 명령이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고통이 됩니다. 죄로 인해 땅도 저주를 받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죄는 모든 관계의 파괴를 가져옵니다. 하나님과, 부부 사이에, 자연과, 그리고 나 자신과의 관계마저 파괴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흙으로 만들어졌기에 흙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21절)
여기까지 보면 인간의 미래는 절망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짓습니다. 의미가 ‘생명’입니다. “산 자의 어머니”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소망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놀라운 소망의 말씀을 주십니다.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벌거벗은 수치를 발견하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몸을 가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가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죽옷을 입혀주십니다. 가죽옷을 입히시기 위해서는 짐승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혀주신 것을 미리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우리의 어떤 노력으로도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 모든 죄를 사해주시고 거룩한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갈3:27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입은 옷을 보시고 거룩하다 인정해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가장 절망의 순간을 하나님의 가장 소망의 약속으로 바꿔주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생명나 무의 길을 막으십니다. 22절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라고 하는데, 사람이 선악을 하나님처럼 안다고 하시는데, 이것이 사실을 말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비꼬는 말로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뱀은 그렇게 유혹했지만 인간의 깨달은 것은 벌거벗은 수치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로 영원히 산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절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생명나무를 불 칼로 막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맞게 되는 죽음도 사실은 은혜입니다. 죄악된 세상의 삶을 그치고 새로운 에덴동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있음이 행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말씀 안에 거할 때 복된 인생입니다. 비록 흙과 같은 존재이지만 생명이 되고 영광이 되는 삶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진노 중에도 소망을 주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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