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5:1-32절/하나님과 동행하더니(26.01.08)

2026.01.8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1절)

​5장은 아담의 계보를 적고 있습니다. 여기 ‘계보’는 ‘톨레돗’이라는 단어인데, 창세기는 10개의 톨레돗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2번째 톨레돗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읽기 힘든 부분이 바로 계보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행하실 때 계보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새 일을 감당하는 중심인물은 보통 계보의 마지막에 나오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도 4장에서 가인과 그의 후손들이 만들어가는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누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은 ‘노아’라는 인물이 등장하고 6장은 노아 홍수 사건의 시작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창조를 다시 한번 정리합니다. 이것은 아무리 세상이 어둡고 절망적이어도 하나님의 뜻은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할 때 계획하신 일들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모양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사람(아담)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은 130세에 3절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하나님께서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것처럼, 아담도 자기 모양과 형상대로 셋을 낳습니다. 이것은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형상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범죄한 아담의 ‘자기 형상’이라는 표현을 통해 온전하지 않음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아담이 낳은 자녀는 가인도 있는데,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범죄 이후 세상은 둘로 나뉘게 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가인의 후예들과,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주인 삼는 셋의 후손들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중심의 거대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가인의 후예가 아닌 묵묵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믿음의 길을 걷는 셋의 후손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우리가 어느 길을 걸어야 할지 분명합니다.

셋은 105세에 에노스를 낳습니다. 이미 4:26절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세상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찾고 부릅니다.

이어지는 족보에서 반복되는 말은 “낳고”와 “죽었다”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상당히 오랜 기간 살았지만 분명한 것은 반드시 죽었다는 겁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육체적 죽음을 가져옵니다. 모든 인간의 실존입니다. 그런데 죽음의 고리를 끊은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에녹입니다. 24절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이 죽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동행의 원어적 의미는 “하나님과 함께 스스로 걸어갔다”입니다. 매일매일 하나님과 함께 걸었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이 주도하는 세상 속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운 것입니다. 세상의 길이나 많은 사람들의 길이 아닌 하나님의 길을 걸었습니다. 외로운 싸움이요, 고단한 싸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 결과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이 데려가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그렇다면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22절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아들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300년을 동행했다고 합니다. 그에게 ‘므두셀라’라는 아들을 낳은 것이 계기가 된 듯합니다. 므두셀라는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인물로 969세를 삽니다. 그런데 연대를 계산해보면 므두셀라가 죽던 해 노아 홍수가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므두셀라가 태어나면서 에녹은 죄악된 세상의 끝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계기가 되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세상 보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이루실 일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과 동행한 것입니다.

므두셀라는 라멕을 낳고, 라멕은 노아를 낳습니다. 29절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죄악된 세상에 안식, 안위를 가져올 아들입니다. 그런데 안위가 심판을 통해서 오게 될 것입니다.

4장과 5장을 비교해보면 등장 인물들 이름이 비슷합니다. 에녹, 라멕 등. 그러나 삶의 모습은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입니다. 동행은 한두 번 함께 걷는 것이 아닌 매일 매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을 찾으시고 생명으로 충만히 채워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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