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4절)
하나님은 노아의 아들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길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함이 범죄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흩어지는 과정에서 하나의 문제가 생깁니다. 1절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원어로 보면 “한 입술”과 “한 말”입니다. 하나됨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됨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됨을 통해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면 그것처럼 복된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죄로 오염된 인생들은 하나됨을 오히려 하나님을 거역하고 도전하는데 사용합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옳지 않은 일에 더 잘 뭉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2절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라고 하는데 “동방으로 옮기다가”의 의미는 “동쪽으로 동쪽으로 동쪽으로” 향했다는 뜻입니다. 동쪽은 분리를 의미합니다. 가인도 하나님을 떠나 “에덴의 동쪽”인 놋 땅에 거주했습니다(4:16절).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진 사람들이 도착한 곳이 시날평지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10:10절 보면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로 용감한 사냥꾼, 즉 폭군이요 독재자였던 니므롯이 다스리는 곳입니다.
이들이 서로 의논합니다. 3절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건축 재료로 벽돌을 견고히 만들고, 역청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건축기술을 비롯한 문명이 상당히 발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술을 가지고 이들이 계획하는 일이 4절입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성읍과 탑”을 건설합니다.
보통 우리는 바벨탑을 쌓았다고 하는데 본문은 두 번이나 “성읍과 탑”이라고 합니다(4,5). 이것을 8절은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계획한 것은 하늘에 닿는 탑을 가진 거대한 도시입니다. 이처럼 도시를 건설하려 한 것은 흩어짐을 면하기 위함입니다. 분명 하나님은 9:1절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땅 곳곳에 흩어져 하나님의 창조 명령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가인이 성을 쌓고 하나님 없이 스스로 안전을 지키려 한 것처럼 도시를 건설하려 합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아무 문제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은 겁니다.
또한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라고 하는데, 지금 건축술이 놀랍게 발달한 시대에도 하늘에 닿는 탑을 쌓는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렇게 계획합니다. 이들의 마음 상태를 보여주는 겁니다. 하나님이 되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앉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이름을 내고”, 즉 자신들의 명성과 업적을 길이길이 남기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인생들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 도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다시 선악과를 따먹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시대는 변하지만 인간이 추구하는 방향은 다르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처럼 되려고 선악과를 먹고 있습니다.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7절)
5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고 합니다. 저자의 유머가 담겨있다고 생각됩니다. 사람들이 쌓는 성읍과 탑은 인간들이 보기에는 거대한 건축물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 땅을 보시는데 인간들이 무언가를 꼼지락거리며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려오셔서 살펴보십니다. 무엇을 말하냐면? 인간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아 올리는 바벨탑이 아무리 거대하다 해도 영광과 능력의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께 도전하는 일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원인이 같은 말을 사용하는 한 백성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계획하고 진행한 겁니다. 6절 하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즉 한 언어가 계속되면 이런 일들이 반복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됨을 죄악된 인간은 절대 좋은 방향으로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께 도전하는 일에 힘을 모은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7절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사람들이 3절과 4절에서 서로 의논의 방식으로 하나님께 도전했다면 하나님께서도 의논의 방식, 즉 천상 회의를 통해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기로 결정하십니다. 인간의 계획이 하나님에 의해 무너집니다. 당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대단한 힘을 사용하신 것이 아닌 언어 하나만을 혼잡하게 하셨을 뿐인데 사람들은 혼란을 겪고 모든 일은 순식간에 중단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손가락 하나만 드셔도 세상은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하나되어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언어를 혼잡하게 해서 흩으십니다. 9절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그렇습니다. 자신들의 이름(명성)을 내려하였는데, 그들이 얻은 이름은 바벨, 즉 혼란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도전하며 자신이 주인되어 살아가는 삶의 결과는 혼란입니다.
다시 한번 사람의 제일된 목적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고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이 됩시다. 우리의 힘든 문제들도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해결해주실 것을 신뢰하며 맡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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