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2절)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하늘의 뭇별들을 보여주시며 후손에 대한 약속을 해주셨고, 쪼갠 고기 사이를 홀로 지나가시는 횃불 언약으로 땅에 대한 약속을 확증해주셨습니다. 이제 이 약속을 붙잡고 믿음으로 인내하면 됩니다. 그런데 위기가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루려합니다. 그 결과 한 가정에 비극이 찾아옵니다.
1절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라고 합니다. 분명 사래가 “아브람의 아내”라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래를 통해서 약속의 자녀를 주신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그것을 다 아시고 아브람을 부르셨습니다. 인간의 능력이 조금도 포함되지 않는 오직 은혜로,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약속을 받은지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도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시지 않자 사래는 불안합니다. 10년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상의 방법,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합니다.
사래의 마음이 이해됩니다. 자신이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한 방법이 자신 곁에 있는 하갈이라는 여종을 통해서 자녀를 얻으려 합니다. 당시에 이런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결혼한 신부가 2년 안에 아이를 낳지 못하면 노예를 사서 후손을 잇도록 했습니다. 그러니 사래가 선택한 방법은 세상적으로는 문제가 없는지 모르나 하나님의 방법은 아닙니다.
사래는 2절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라고 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서운함을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안 주시니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래는 출산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알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생명의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위대하고 하나님의 방법은 무한한데 유한한 인간은 자신의 한계, 자신의 방법 안에 갇혀 선택할 때가 많습니다. 문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문제에 집중할 때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더 심각한 일은 이런 사래의 요청에 아브람이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그대로 따랐다는 겁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늘의 뭇별을 보았고, 감동적인 횃불 언약을 경험한 아브람이 멈추게 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매일 괴로워하고 한숨짓는 사래의 요청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2절 하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는 마치 3장에서 먼저 선악과를 먹은 하와가 남편 아담에게도 주자 순순히 받아 먹은 것과 비슷합니다. 멈추어야 할 기회를 놓친 것이고 그 결과는 심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말씀을 기준으로 가야 할지, 멈추어야 할지를 잘 결정해야 합니다.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니 하갈이 임신을 하고 여주인 사래를 멸시합니다.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로인해 사래가 불평을 하자 아브람은 자신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일을 사래에게 맡겨버립니다. 사래는 하갈을 학대하고 하갈은 견디지 못하고 도망합니다. 아이를 잉태한 여인이 집을 떠나 광야를 방황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믿음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사람의 생각으로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한 결과가 이렇습니다.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14절)
사래의 학대를 피해 도망하는 위태로운 여인 하갈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납니다. 가련한 한 여인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장소가 7절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이라고 합니다. 여기 “술 길”은 애굽 근처 지역입니다. 그렇다면 하갈은 자신의 고향인 애굽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묻습니다. 8절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마치 범죄한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3:9)라고 물으신 것과 비슷합니다. 하갈의 현주소를 묻고 계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분명하게 하갈의 정체성을 “사래의 여종”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사자는 하갈에게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갈이 가장 염려하고 있는 뱃 속에 있는 자녀에 대한 약속을 줍니다. 11절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아들 이름을 ‘이스마엘’로 지으라고 합니다. 의미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갈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찾아오시며 인생의 벼랑끝에서 해결책을 제시해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마엘의 미래를 알려주시는데 12절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들나귀처럼 자유분방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다른 사람과 대항하면서 살아가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이 말씀처럼 이스마엘의 후손들로 인해서 늘 갈등과 전쟁이 계속되는 것을 봅니다.
하갈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13절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두 번이나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얼마나 큰 감동이 되었는지를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그곳 샘 이름을 ‘브헬라해로이’라고 부르는데 의미가 “나를 살펴보시는 살아계신 자의 우물”입니다. 하갈은 여호와의 사자 권면처럼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낳습니다.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부릅니다.
어쩌면 하갈의 고백은 아브람과 사래가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하는지를 알게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고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지만 고통을 들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문제 앞에서 우리의 고통을 들으시고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인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해결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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