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17:1-27절/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26.01.23)

2026.01.23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5절)

​아브람은 그의 아내인 사래를 통해 자녀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때 아브람의 나이가 86세였습니다. 그리고 13년이 지난 99세에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십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침묵하신 13년은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점점 희미해져가고 이스마엘에게 소망을 두며 살아가는 때였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1절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여기 “전능한 하나님”은 ‘엘샤다이’로 무한한 능력의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가장 먼저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아브람의 실패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내가 할 수 없으니 하나님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무지와 조급함이 실패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앞으로 어떤 말씀을 하시든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하십니다. 엘샤다이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또한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시는데 상황과 환경에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아브람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너와 함께 하는 하나님이 무한한 능력의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 신뢰해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라. 하나님이 이루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다시 언약을 맺어주시는데 2절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본문에 “내 언약”이라는 단어가 9번이나 반복됩니다(2,4,7,9,10,13,14,19,21). 노아와 맺은 언약도 하나님은 “내 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9:9).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맺으시지만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영원히 지키시는 언약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언약”이라는 말도 반복됩니다(7,13,19). 사랑으로 언약을 맺어주신고 신실하심으로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그렇습니다. 은혜로 선택하시고 하나님께서 붙잡아주시고 이끌어주시며 완성하십니다. 그 은혜에 감사함으로 우리는 언약에 신실한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십니다. 이를 위해 이름을 바꿔주시는데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람’의 의미는 “존귀한 아버지”라면 ‘아브라함’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입니다. 현실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아니라, 아브라함과 사래 사이 자녀도 없습니다. 현실의 눈으로 보면 말이 안 되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름을 바꿔주시고 그렇게 불러주십니다. 그리고 만들어가십니다. 그러니 우리의 정체성을 우리의 현실로 바라보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들어가실 미래를 약속의 말씀으로 바라보며 정의하고 선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자녀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언약을 맺어주셨는데, 이에 대한 반응으로 하나님은 할례를 행하도록 하십니다. 11절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할례를 거부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 하십니다.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육체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롬2:29절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라고 합니다. 마음의 할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 다른 말로 인치심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할례를 받은 성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19절)

​하나님은 사래의 이름도 바꿔주십니다. ‘사래’는 “공주, 여왕”이라는 뜻인데, ‘사라’로 바꿔주십니다. 의미가 아브라함처럼 “여러 민족의 어머니”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이름을 바꿔주신 유일한 여인이 ‘사라’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습니다. 비웃음입니다. 17절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을 때까지만 해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생산능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사라는 말할 것도 없고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약속하신 바를 이루십니다. 즉 인간의 능력이 끝나는 지점에서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약속을 이루십니다.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인간의 절망이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아브라함은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이나 돌봐주시길 요청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19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하십니다. 낳은 자녀의 이름까지 ‘이삭’이라고 지어주십니다. ‘이삭’의 뜻은 “그가 웃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웃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진정한 웃음, 기쁨을 주십니다. 이삭은 아브라함 한 가정의 기쁨만이 아니라 여러 민족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이 태어날 시기도 정확하게 알려주십니다. 21절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이에 아브라함은 23절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할례를 행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합니다. 완전히 이해되지 않지만 말씀에 순종합니다.

실수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다시 찾아오시고 다시 언약을 맺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차선책이 아닌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을 이루십니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불가능하다고 하나님을 비웃고 포기하고 싶은 그때가 하나님이 일하시는 때입니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붙잡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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