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19:24-38절/아브라함과 롯(26.01.28)

2026.01.28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26절)

​하나님께서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십니다. 25절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고 합니다. “온 들”, “모든 백성”, “땅에 난 것을 다”라는 표현을 통해 죄악의 도성과 관련된 모든 것을 멸하십니다. 노아 홍수가 죄로 가득했던 온 세상에 대한 심판이었다면, 소돔과 고모라는 죄로 가득한 도성에 대한 심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죄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 가운데서 롯의 가정만 구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합니다. 26절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이미 17절에서 천사는 경고했습니다.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결과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뒤를 좀 돌아보았다고해서 이렇게 된다는 것이 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본 이유는 소돔 성에 대한 미련이요 집착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그의 마음과 생각을 채우고 있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것을 포기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그녀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영적인 죽음이라고 합니다. 그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부와 명예와 자리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것과 높은 자리에 있다 해도 하나님의 생명이 없다면 실은 죽은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 생명의 삶이요 복된 삶입니다.

오늘 본문은 롯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비극 사이에 아브라함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을 비교하고 있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어나 27절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중보 기도했던 자리에 서서 소돔과 고모라 쪽을 바라보니 거대한 연기가 솟아오릅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이 무거웠을 것입니다. 조카 롯에 대한 염려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는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하나님 없는 죄악의 세상을 향하는 삶이 아닌, 더디지만 때론 힘도 들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는 믿음의 삶을 결단했을 겁니다.

29절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고 합니다. 앞에서는 롯과 관련해서 여호와께서 자비를 더하셨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생각하신 겁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를 생각하셔서 롯을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으로 하여금 생각하시도록 그리고 일하시도록 합니다. 누군가를 돕는 가장 강력하고 위대한 방법은 기도입니다. 우리 기도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게 합니다. 우리 기도가 우리와 자녀들, 가정과 교회 공동체를 살립니다.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32절)

​롯 가정의 비극은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된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롯은 소알 성읍에 거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산으로 도망해서 굴에 거주합니다. 그런데 큰딸과 작은딸이 하나의 계획을 세웁니다. 이 땅에 배필 될 남자들이 없으니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아버지와 동침하여 후손을 이어가자는 겁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생각을 딸들이 자연스럽게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반대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말하냐면 소돔의 가치관에 자녀들이 물들어 있습니다. 성에 들어온 나그네와 동성애를 하는 것이 일상인 도시에서 이런 딸들의 생각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이 아닌 성경적 가치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변하는 세상의 흐름에 따르지 않고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기준으로 세상과 싸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또 하나 딸들의 문제점은 31절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라는 말입니다. 물론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해서 남자가 없지만 온 세상 남자들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눈에 보기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질문이 잘못되니 답이 바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대로만, 우리의 한계 안에서만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이래서 위험합니다.

사실 롯이 소돔 땅을 선택한 이유가 눈으로 보니 좋았기 때문입니다. 물이 넉넉하고 푸른 초원이 있는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죄악의 도성이었습니다.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한 것이지요. 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 내 생각이 전부입니다. 믿음의 눈을 뜨는 것, 영적인 지평을 넓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자녀가 없는 상황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인내하고 있습니다. 롯의 딸들처럼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습니다.

32절부터는 “술을 마시게 하고”가 네 차례 반복됩니다(32,33,34,35). 노아는 스스로 술을 마시고 벌거벗은 결과 자식인 함을 저주하게 됩니다. 반면 롯은 자녀들이 술에 취하게 합니다. 죄와 술취함이 연결됩니다. 뿐만 아니라 33절과 35절은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고 합니다. 롯의 영적인 상태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가장인 아버지가 깨어서 자녀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고 본을 보여야 하는데 영적으로 무감각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합니다.

아버지와의 동침 결과 두 딸이 임신합니다. 큰딸은 아들을 낳고 ‘모압’이라고 하는데 의미가 “아버지로부터 유래한 자”입니다. 둘째 딸도 아들을 낳고 ‘벤암미’라고 합니다. 의미가 “나의 친족의 아들”입니다. 이들이 ‘암몬’족속이 됩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민족들이 이렇게 생겨납니다.

세상을 향하여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나라 꿈을 붙잡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세상 가치관에 흔들리지 말고 말씀의 기준을 선명하게 붙잡읍시다. 이를 위해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적용하는 삶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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