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남편을 불러 오라”(16절)
육신의 갈증을 느끼시는 예수님과, 영혼의 목마름을 가진 여인이 만나 대화를 나눕니다. 대화 중 예수님께서 다시 목마르지 않는 물을 주시겠다고 하자 여인은 그런 물을 달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뜨거운 대낮에 물을 길로 오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런 물을 주시든지, 아니면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셔야 할텐데, 갑작스런 요청을 하십니다. 16절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하지만 이 질문은 여인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직시해야 할 질문입니다. 그래서 던지십니다.
여인은 남편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낯선 남자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18절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라고 하십니다. 누구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 특히 처음 만난 유대인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사실이 드러납니다. 요한복음은 계속 예수님께서 사람을 잘 아신다고 하는데 여인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16-18절까지 ‘남편’이라는 단어가 5번 반복됩니다. 여인이 자신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한 인생의 ‘물’로 의지했던 것이 바로 남편입니다. 사람입니다. 그러나 남편은 생수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상처와 아픔을 주는 존재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남편에 대한 질문은 여인이 지금까지 무엇을 붙잡고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것을 의지한 결과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참된 생수를 만나기 위해서 생수가 아닌 것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사람, 물질, 명예와 지위 등을 의지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그것으로 인해 더 깊은 목마름을 경험하게 됩니다. 상처와 아픔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 붙잡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내려놓아야 합니다.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24절)
여인이 숨기고 싶었던 남편 이야기를 예수님께서 꺼내셨다면 이어지는 대화는 왜 그런 인생을 살게 되었는지로 이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화의 방향이 갑자기 예배로 바뀝니다. 이제는 여인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20절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대화를 통해 예수님이 보통 분이 아니고 선지자처럼 느껴졌던 여인은 그동안 궁금해했던, 하지만 답을 얻지 못한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어디에서 예배해야 하는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마리아와 유대 지역이 각각 예배하는 장소가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에 나온 것처럼 다윗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예배합니다. 이들은 구약성경 전체가 아닌 모세오경만을 인정했습니다. 그 가운데 신명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며 하나님과 언약을 세운 산이 있습니다. 그리심산과 에발산입니다. 그 가운데 축복이 선포된 그리심산에 성전을 짓고 예배했습니다. 이 갈등이 심했습니다. 한번은 유대인들이 그리심산 성전을 파괴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묻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엉뚱한 대답을 하십니다. 장소가 중요하지 않을 때가 온다는 겁니다. 21절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수님은 ‘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23절도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고 하시면서 계속 ‘때’를 강조하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때는 “십자가와 부활의 때”입니다. 그때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고 무엇으로 예배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건물 성전은 신약의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예수님이 참 성전이십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그것을 완성하십니다. 그렇다면 건물 성전은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건물성전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참 성전이시고 예수님을 모신 성도들이 성전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고 예수님 안에서 예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본문은 두 번이나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합니다. 여기 ‘영’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진리’는 진리이신 예수님입니다. “영과 진리”는 곧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알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완성하신 일을 알며,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신분과 변화를 알고 감사함으로 예배하는 겁니다. 그런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예배하는 겁니다. 우리 예배의 태도가 바르지 않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배할 때마다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내용들입니다.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메시아를 생각합니다. 25절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요한복음 흐름 속에서 점점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가 선명해집니다. “메시야 그리스도”이십니다. 여인은 아직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데 예수님께서 밝히십니다. 26절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이처럼 여인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점점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는 이상한 유대인으로 알았습니다(9절). 그러다 12절 하에서는 “야곱보다 크신 분”으로, 19절에서는 ‘선지자’로, 그리고 25-26절은 메시야 그리스도로 압니다. 그리고 이 앎이 여인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켰습니다. 예수님을 알아가고 만난다는 것이 바로 이렇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대화 주제가 바뀌는 이유가 있습니다. 생수 이야기가 남편 이야기로, 그리고 예배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가장 먼저 무엇이 생수가 아닌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참된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보다 더 의지하고 사랑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점검해봐야 합니다. 사람, 물질, 자리와 명예라고 한다면 내려놓읍시다. 또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예수님 중심의 영과 진리로 예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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