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4:27-42절/나의 양식은(26.02.11)

2026.02.11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28절)

​수가성 우물가에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가 계속되었습니다. 목마름으로 시작된 대화가 남편 이야기로, 그리고 예배 이야기로, 결국 메시아, 그리스도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26절 “내가 그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여인이 말한 그리스도이심을 밝히신 겁니다. 이 사이 제자들이 음식을 사러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과 여인의 대화를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묻는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가까이서 지켜본 예수님은 이유없이 어떤 행동을 하시지 않으니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된 여인의 행동이 놀랍습니다. 28절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물동이를 버려둡니다. 물을 길으러 나왔던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었다는 것은 육신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물보다 더 귀한 것을 발견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다시 목마르지 않는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자신의 모든 문제를 아시는 예수님, 그렇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주님을 만난 기쁨이 여인의 마음에 가득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향해 달려갑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그동안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사람들이 없는 뜨꺼운 한 낮에 물을 길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에게 기쁜 소식을 들고 달려갑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두려운 존재가 아닌 참된 기쁨을 나누고 싶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29절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와서 보라”는 1장에서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초청이고(1:39),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했던 말입니다(1:46).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시간은 짧은 시간입니다. 그런데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을 전하는 일이 많은 것을 알아야 하고, 많은 신앙의 경험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얼마의 시간이었든지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는 겁니다. “와서 보라”고 초청하는 겁니다. 이 초청에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옵니다. 아마 여인의 달라진 모습에 놀라서였을 겁니다. 이전과 다른 여인의 기쁨과 확신의 이유를 알고 싶어서였을 겁니다. 예수님을 만난 달라진 여인의 모습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께 나오게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 생각하게 됩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34절)

​여인이 동네에 들어간 사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알려주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음식을 권하자 예수님께서 의외의 답을 하십니다. 32절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은 누군가 예수님께 음식을 갖다 드렸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미는 그것이 아닙니다. 34절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정확한 의미를 알려주십니다.

요한복음은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들이 계속됩니다. 니고데모도 거듭남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수가성 여인도 영적인 목마름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양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요한이 강조하는 것은 영적인 진리를 사람이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지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실 때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이 중요합니다. 영적 존재인 우리는 영적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통해 영적 생명을 풍성히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왜 양식이라고 하셨을까를 생각해보면 양식을 먹지 못하면 살 수 없습니다. 양식이 생명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 목적과 사명을 감당하는 삶이 참 생명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서 그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제자들이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강조하십니다.

이를 위해 35-38절까지 길게 설명하시는데 내용이 쉽지 않습니다. 정리해서 설명하면 제자들은 이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인식했어도 느긋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35절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고 하십니다. 시간이 많으니 서두를 필요 없다는 격언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십니다. 36절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보통은 일을 하고 삯을 받는데 이미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시급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통해 복음 전파를 통해 영혼을 살리는 일이 중요성과 시급성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35절 하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추수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뿌리고 거두는 자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거둔다”라는 단어가 반복됩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지금까지 뿌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렇고 예수님 바로 앞에 등장했던 세례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뿌린 이들이 전한 구약의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오셨다면 이제는 거두어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을 전해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해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사마리아 땅에서 하셨다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데 외면하고 배척해야 할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지역과 신분을 넘어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다시 여인과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인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더 듣기 원해서 이틀을 더 머무시길 요청합니다. 보통 유대인이라면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머무시며 말씀을 전하십니다. 그 결과 41절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처음에는 여인의 말로 인해서 예수님께 나왔는데,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여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42절 하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와서 보라”는 여인의 초청을 따라 신앙이 시작되었지만, 친히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알고 믿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버리고 주님을 전해야 할 물동이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는 무엇을 양식으로 삼고 있는가? 먹는 것에 관심이 많은 시대,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알고 온전히 이루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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