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2:1-20절/큰 기쁨의 좋은 소식(25.02.11)

2025.02.11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7절)

 

1장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요한의 탄생 이야기가 중심이었다면 2장은 드디어 예수님께서 태어나십니다. 천사는 이미 마리아에게 이렇게 알렸습니다. 1:31-32절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그렇습니다. 태어나실 예수님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영원하신 주님께서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십니다. 그렇다면 영원하신 성자는 어디에서 태어나셔야 하며, 누구의 환영을 받아야 할까요? 당연히 가장 좋은 곳에서, 가장 높은 사람들의 화려한 축하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정반대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십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세상을 다스리던 자는 로마제국의 아구스도 황제입니다. 그가 내린 명령은 1절 “천하로 다 호적하라”입니다. 한마디로 인구 조사를 실시하는 것인데, 목적은 세금을 징수하기 위함입니다.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유대인들도 황제의 명령에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 호적을 합니다. 요셉은 다윗의 집 족속이기에 살던 곳인 갈릴리 나사렛을 떠나 베들레헴을 향하여 갑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십니다.

베들레헴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슬픔의 땅입니다. 창35:19절을 보면 야곱의 아내 라헬이 죽자 베들레헴에 묻었습니다. 삿19장에는 비극적인 사건인 레위인의 첩 사건이 나오는데,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여인의 고향이 베들레헴입니다. 이런 베들레헴이 미가5:2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는 예언이 있습니다. 가장 작은 곳, 슬픔의 땅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예언이 성취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이처럼 슬픔의 장소가 10절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의 장소가 됩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하기 위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마리아는 아이를 출산하게 됩니다. 세상 황제의 통치 아래서 가장 보호를 받아야 할 산모가 어려움을 겪습니다. 거기다 이 가정이 머물 객실이 없어서 아이를 낳았는데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다고 합니다. 당시는 나귀나 말을 키우는 공간과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유에 뉘었습니다.

세상 임금이 머무는 화려한 궁궐과 하나님이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뉘이신 구유가 대조를 이룹니다. 이는 앞으로 예수님께서 어떤 사역을 이루어가실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낮은 곳으로 가시고, 소외되고 버림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들의 소망이 되실 것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14절)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자들도 밤중에 밖에서 양을 지키는 목자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은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님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데 누가복음은 당시 낮은 신분인 목자들이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들었다고 기록합니다. 목자들에게 주의 사자가 나타나 주의 영광을 비춥니다. 목자들은 놀라고 무서워합니다. 이때 천사가 말합니다. 10절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해줍니다.

7절까지의 내용은 가장 슬픈 소식입니다. 산달이 임박했음에도 황제의 명령을 따라 호적을 하러 가야하고,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출산을 하게 되며 좋은 방이 없어 짐승과 함께 머무는 곳에서 아이가 태어나 구유에 뉘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천사는 이 일이 “큰 기쁨의 소식”이라고 합니다. 이유는 태어나신 분이 바로 예수님,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1절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합니다. 여기 “구주”, “주”라고 하는데 태어나신 예수님이 “주인”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당시는 당연히 황제를 ‘큐리오스’, 즉 ‘주’라고 고백하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황제가 아닌 예수님이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이 주인으로 통치하신다는 사실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예수님의 통치는 1:78-79의 말씀 처럼 돋는 해처럼 떠올라서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비출 것입니다. 빛으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평강으로 채워주십니다. 목자들이 경험한 것도 그렇습니다. 어둔 밤에 주의 영광의 빛이 비추었습니다. 무섭고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기쁨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실 일을 보여줍니다. 목자들에게는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이가 표적이 됩니다.

이 소식을 전하고 수많은 천군 천사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14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이 장면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놀라운 광경이며,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모습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심을 수많은 천군 천사가 기뻐하며 찬양합니다.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라고 찬양합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께 영광일까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를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보내신 겁니다. 영원하신 주님이 인간의 유한한 역사 속으로 들어오시고, 한 여인의 배속에 머무시다고 갓난 아이의 몸으로 이 땅에 태어나셔서 구유에 누이신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결국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실 것입니다. 이 일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도하셔서 진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가장 큰 슬픔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의 종노릇하며 신음하는 백성들을 외면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를 지게 하심으로 구원하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평화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친정한 목자가 되십니다. 주인이 되십니다. 빛과 생명이 되시고 평화가 되십니다. 슬픔의 변하여 큰 기쁨이 되게 하십니다. 주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주님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삶이 됩시다.
[출처] 누가복음2:1-20절/큰 기쁨의 좋은 소식(25.02.11)|작성자 늘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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