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2:19-30절/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25.05.27)

2025.05.30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19절)

사도 바울은 앞부분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기 위함입니다(14). 그리고 오늘 본문이 이어집니다. 빌립보교회에 사역자를 보내기를 원하는데, 디모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를 보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상당히 길게 설명합니다. 읽다 보면 에바브로디도로 인해 빌립보교회 안에 어떤 문제가 발생한 것 같고, 그것을 염려한 바울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19절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빌립보교회 소식을 들은 것은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입니다. 그를 25절 하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즉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에게 선교헌금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고 동시에 빌립보교회 소식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빌립보교회를 향한 걱정이 생긴 듯 합니다. 그래서 “속히”(19,24)라는 단어를 사용해 디모데를 보내기를,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직접 가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디모데를 선택했을까요? 20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고 합니다. 빌립보교회에 문제가 있는데, 교회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유익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잘 처리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핵심은 “진실한 마음”입니다. 자기 유익이나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일에 적임자가 디모데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일, 예수님의 영광이 아닌 자기 일, 즉 이익과 영광을 구합니다. 지금도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교회를 흔들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지도자들은 교회 문제에 개입해서 이득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신의 뜻만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예수님의 일을 구하는 자요, 교회를 생각하는 자요, 특별히 바울과 뜻을 같이하는 자입니다. 디모데는 연단의 과정을 통해서 이런 성숙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영적인 아들로 복음을 위해 수고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처럼 신실한 사역자 디모데를 빌립보교회로 보내기를 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가서 사정을 듣고 성도들을 위로하고 해결책도 제시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지만 교회를 향한 바울의 사랑과 열정이 놀랍습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29절)

바울은 장기적으로는 디모데를 보내려고 하지만, 지금 바울이 보내려는 사람은 에바브로디도입니다. 그래서 25절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궁금합니다. 바울의 소개처럼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의 쓸 것을 돕는 자, 즉 빌립보교회에서 모아진 선교헌금을 바울에게 전달하고 교회 소식을 전해준 사람입니다. 그래서 “너희 사자”라고 합니다. 여기 사자는 원어로 ‘사도’인데 한마디로 빌립보교회 사역자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잘 알고, 교회로 돌아가 성도들을 만나는 것이 마땅한데 왜 여기서 이렇게 길게 소개를 하고 설명을 하는 것일까요?

본문에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 에바브로디도 때문에 교회에 갈등이 생긴 듯 합니다. 그리고 교회 지도자로 인한 갈등은 심각한 문제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문제점을 짐작할 수 있는 구절이 26절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고 합니다. 에바브로디도가 병이 들었습니다. 27절을 보면 죽음에 이르는 심각한 질병이었습니다. 그것도 바울에게 선교헌금을 전달한 후 이런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근심이 컸습니다. 그런데 26절 하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고 합니다. 에바브로디도가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면 교회가 근심하고 기도해주어야 할 것인데, 에바브로디도가 심히 근심합니다. 여기 “근심”이라는 단어는 심각한 정신적인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런 근심의 이유가 자신이 병든 것을 교회가 알았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가 선교헌금을 가지고 멀리 있는 바울에게 간다고 했을 때 건강에 문제가 있었는지, 아니면 연약한 상태였는지 알 수 없지만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을 보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을 사랑하고 섬기고 싶은 마음에 자신이 감당하겠다고 했는데, 긴 여행의 피로 때문인지 병들게 되었고 사경을 헤매게 된 것입니다. 이 소식을 교회가 들었을 때 분명 두 가지 소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거 봐라, 왜 우리 말 안듣고 고집을 피우더니 이렇게 되지 않았느냐?”, 다른 한편에서는 “이렇게 될 것을 알고 그런 것이냐? 바울의 사랑하는 마음으로 갔다가 병에 걸린 것이니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이것은 그냥 예를 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서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분쟁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특히 바울 자신을 긍휼히 여기셔서 고쳐주심으로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도우신 일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에바브로디도가 가면 기쁨으로 맞이해서 자신이 근심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책망이나 비난 대신 29절 하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0절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이것이 에바브로디도 질병에 대한 바울의 시각이고 해석입니다. 누군가는 문제라고 하지만, 사실은 목숨을 돌보지 않고 자신을 섬긴 것이며, 그것은 빌립보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서 감당한 것이므로 오히려 감사하고 격려해야 할 일이라는 겁니다.

이처럼 모든 일에는 시각이 중요합니다. 해석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관점, 은혜의 시각이 필요합니다. 특히 교회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감당하는 신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0개의 댓글

댓글 제출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