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5:1-14절/죽임 당하신 어린양(25.07.09)

2025.07.9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2절)

​4장은 열린 문을 통해 올라간 요한이 보좌와 보좌에 앉으신 이를 주목하였습니다. 그 영광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립니다. 5장은 요한의 시선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린 두루마리를 향합니다. 1절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고 합니다. 안팎으로 쓰인 두루마리가 있고 일곱 인으로 봉했습니다.

어떤 내용일까요? 안팎으로 쓰인 두루마리에 대한 내용이 겔2:9-10에 나옵니다.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에스겔에서는 안팎에 쓰인 글의 내용이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두루마리도 하나님의 심판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과연 누구를 향한 심판인가?”하는 겁니다.

힘 있는 천사가 외칩니다. 2절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인을 떼서 두루마리를 펼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크게 울었다고 합니다. 요한은 이 심판의 책이 두루마리가 열리길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기록된 심판은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인 악의 세력을 향한 심판입니다. 그리고 사탄과 악의 세력에 대한 심판의 날은 반대로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두루마리가 반드시 열려야 하는데 열 사람이 없어서 요한이 통곡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묵상하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은 성도들이 아닌 사탄과 악의 세력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들의 심판은 성도들의 승리로 이어집니다.

울고 있는 요한에게 장로 중 한 사람이 인을 뗄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5절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고 합니다. “유대 지파의 사자”는 창49:9-10절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이라고 했는데 바로 그 사자(Lion)입니다. 또한 “다윗의 뿌리”는 사11:1절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하는데 이새는 다윗이 아버지입니다. 이 인물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이 승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인을 뗄 수 있습니다. 요한이 이 분을 찾기 위해 둘러봅니다. 6절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승리한 사자를 기대했는데 어린양이 서 있습니다. 그것도 일찍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십니다. 본문에는 이렇게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을 반복 강조합니다(6,9,12).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승리가 어떤 승리인지를 알게 됩니다. 세상은 사자와 같은 승리를 기대합니다. 힘과 부와 권력으로 누르고 삼키는 승리입니다. 당시 로마제국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승리는 어린양의 승리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희생과 섬김의 승리입니다. 우리는 사자가 되고 싶은지 아니면 어린양의 되고 싶은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지만 어린양이신 예수님은 6절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참된 권세와 온 세상을 감찰하시는 능력으로 성도들과 함께 하시고 반드시 승리를 주십니다.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고 인을 떼십니다.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10절)

​8-14절은 어린양에 대한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어제 말씀도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후반부를 가득 채웠다면 오늘은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찬양이 가득합니다. 요한은 고난의 시기를 지나는 성도들에게 문제와 고난에 집중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찬양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찬양 이전에 8절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부르짖는 성도들의 기도를 하나도 잊지 않으시고 금대접에 담아 놓으십니다. 그리고 이 성도들 기도의 응답으로 지금 두루마리에 기록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즉 성도들이 고난 속에서 부르짖습니다. “언제까지입니까?, 악의 세력을 심판하시고 우리에게 승리를 주세요!, 우리의 고통을 신원하여 주세요!”라고 부르짖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다시 강조하지만 계시록의 심판은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고, 당연히 성도들을 향한 심판이 아닌 사탄과 악의 세력에 대한 심판입니다.

어린양되신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9-10절을 보면 일찍이 죽임을 당하셨는데 이유는 사람들을 피로 사시기 위함입니다. 생명을 주셔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신분은 10절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렇습니다. 나라와 제사장이 되었고 왕노릇하는 존재입니다.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이 연결된다고 했는데,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사람을 왕노릇하라고 창조하셨습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그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노예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는 예수님께서 자기 피로 사셨습니다. 그리고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시고 다시 왕노릇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겉모습은 세상과 다르지 않지만, 우리의 신분은 나라와 제사장이요 왕입니다.

이 어린양되신 예수님 앞에 합당한 반응은 찬양과 경배입니다. 만만, 천천의 천사들이 큰 음성으로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찬양합니다. 그 내용이 12절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 마음의 벅찬 감격을 쉴 새 없이 선포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 역시 13절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찬양하며 경배합니다.

악이 가득하며 온 세상을 지배할 것 같지만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악의 세력을 심판하시고 성도들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그러니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어린양의 승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사자처럼 힘과 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희생과 섬김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의 신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린양이 피로 사셨습니다. 나라와 제사장이 되게 하시고 왕노릇하게 하시는 존재임을 기억하며 하루도 승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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