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6:1-17절/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25.07.10)

2025.07.10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1절)

​5장에는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 두루마리가 들려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내용이 안팎에 기록되어 있었는데, 이는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악인들에 대한 심판에 관한 것입니다. 두루마리를 봉인한 일곱 인이 하나씩 떼어지면서 일어나는 재난들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6장은 일곱 개의 인 중 여섯째 인까지 떼어집니다.

첫 번째 인을 떼는데 1절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하나님 보좌 옆에서 피조물의 대표로 하나님을 찬양했던 네 생물 중 하나가 “오라!”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그러자 심판하는 말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인을 뗄 때마다 “오라”는 외침이 있습니다. 즉 심판하는 말 탄 자들이 하나님의 허락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그래서 4절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라고 합니다. 오는 것도 그렇고 심판하는 것도 허락을 받아 행합니다. 즉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이루어집니다.

첫 인을 떼니 2절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고 합니다. 넷째 인까지 말이 등장합니다. 흰 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입니다. 이들을 통해서 땅에 전쟁과 기근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말이 2절의 “흰 말”입니다. 왜냐하면 계19:11절을 보면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도 백마 탄 자가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이 충신과 진실이며 공의로 심판합니다. 이 백마를 탄 자는 예수님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절의 흰 말을 탄자도 예수님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맥의 흐름을 보면 두루마리 내용은 심판에 관한 내용이고 말들이 등장하면서 심판을 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이 아닌 심판하는 자로 이해하는 것이 맞습니다.

첫째 인이 떼지니 흰 말 탄 자가 이기고 또 이깁니다. 그렇다면 악의 세력들이 패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인에 떼지니 붉은 말을 탄 자로 인해 땅이 화평이 사라지고 서로 죽이며 칼을 받게 됩니다. 셋째 인이 떼어지니 검은 말이 등장하는데 그의 손에 저울이 들려있습니다. 저울은 식량을 매매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6절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고 합니다. 한 데나리온이면 노동자 하루 품삯인데 그것으로 밀 한 되 혹은 보리 석 되만 살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물가가 심히 올라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겁니다.

하지만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많은 해석들이 있지만, 당시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곡물 생산을 증가시키기 위해 포도나무의 절반을 베어버리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이에 반대하는 소동이 일어났고 그 명령은 취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는 말씀은 그 당시 성도들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이해했을 것이며, 핵심은 흉년이 얼마나 극심한지, 그래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극단적인 조치를 취해야 했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넷째 인을 떼니 청황색 말이 나와 땅 사분의 일이 검과 흉년 사망의 고통을 당합니다.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11절)

​다섯째 인을 떼실 때는 상황이 좀 바뀝니다. 9절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라고 합니다. 이들은 한마디로 순교자들입니다. 그들의 영혼이 제단 아래에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삶이 하나님께 제물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부르짖습니다. 10절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자신들의 흘린 피를 갚아 주시길 호소합니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땅에 임하는 재앙들은 바로 순교자들의 이런 기도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면서 잠시 동안 쉬라 하십니다. 그리고 11절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고 하십니다. 더 많은 순교자가 생겨서 순교자의 숫자가 차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행동하십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처럼 순교자들의 피와 희생의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9절)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이 생명보다 귀한 것임이 드러납니다. 이를 통해 생명력있게 복음이 전파됩니다.

본문 마지막 여섯째 인을 떼시는데 온 세상에 전무후무한 재난이 발생합니다. 큰 지진에 해가 검어지고 달은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땅에 떨어집니다.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리고 산과 섬이 옮겨집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엄청난 재난이 누구를 향한 것인가 하는 겁니다. 15절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땅의 임금과 왕족, 부한 자들과 강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이 주인되어 살아가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성도들을 핍박하던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던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들에게 재난이 임합니다.

그래서 산과 바위 틈에 숨는데 더 무서운 것은 16절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고 합니다. 산과 바위에게 자신들에게 떨어지라고 합니다. 그러면 죽는데도 그렇게 말합니다. 왜냐하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의 진노가 너무 두렵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죽는 것은 나은 것과 같은 진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진노를 땅의 사람들에게 쏟으신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순교한 성도들, 그리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성도들을 뜨겁게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17절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이 진노에서 피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7장에 가면 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삶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땅의 사람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때까지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의 생명력있는 신앙을 통해 생명의 복음이 우리가 있는 곳에 아름답게 증거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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