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15절)
14:1-13절까지는 두 가지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는 구원받은 144,00명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들은 승리하신 어린양과 함께 하늘 시온산에 서서 새 노래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다른 하나는 주님을 따르지 않고 큰 성 바벨론을 따르며 짐승에게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은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12-13장의 성도들이 경험하고 있는 어두운 현실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용과 짐승의 주도하는 세상에서 고통 속에서 인내하는 성도들에게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이 내용을 더 선명한 그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도구가 “예리한 낫”입니다.
요한이 새로운 환상을 봅니다. 14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고 합니다. “인자와 같은 이”는 다니엘서의 예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구름 위에 앉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셔서 온 세상을 통치하는 것과 같이 예수님도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금 면류관을 쓰고 계신다는 것은 왕권과 권세를 의미합니다. 이런 간단한 예수님의 소개가 당시 성도들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로마 황제가 왕좌에 앉아서 절대권력을 휘두르면서 성도들을 박해합니다. 그 기세가 영원할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에 대한 소개는 진정한 왕은 예수님이시고, 그러니 황제들의 권세는 금세 사라질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두려워할 분은 세상 임금이 아닌 하늘 임금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의 손에 예리한 낫이 들려져 있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지만 예수님께서 낫을 가지고 하실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15절의 다른 천사가 말해줍니다.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낫의 용도는 추수를 위함입니다. 곡식이 익어 거둘 때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12절에서 설명한 것처럼 고난 속에서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킨 성도들을 구원하는 내용입니다. 이들에게 수고를 그치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십니다(13절).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둘 때”가 분명히 온다는 겁니다. 용과 짐승이 다스리는 세상이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19절)
그렇다면 믿음으로 인내한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예리한 낫으로 추수 하신다면, 반대로 큰 성 바벨론에 살면서 짐승을 경배하고 세상 정신을 따라 살아간 사람들의 결과는 어떠할까요? 그것이 17-20절입니다. 이번에는 예수님이 아닌 17절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고 합니다. 천사의 손에 예리한 낫이 들려있습니다. 이 천사에게 다른 천사가 큰 음성으로 말을 합니다. 18절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고 합니다.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등장하는데 10절은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한 자들이 진노의 포도주를 마신다고 했는데 그것이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즉 그것을 담당하는 천사가 심판을 위해 등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천사가 어디로부터 나왔다고 하냐면 “제단으로부터 나와”입니다. 계시록에서 제단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 제단 아래는 6:9-10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서 하나님께서 탄식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6:10절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 진노의 심판도 성도들의 탄식의 기도가 응답되는 과정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포도송이를 거두라 하는데, 앞에서 나왔던 진노의 포도주와 연결하면 그냥 포도 수확이 아닌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사가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둡니다. 그리고 19절 하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집니다. 여기서도 “큰”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냥 포도주 틀이 아닌 큰 포도주 틀이라는 것은 그렇게 짐승을 경배하고, 큰 성 바벨론에 속해서 이 땅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간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소수의 성도들이 살아가기가 힘들었던 것이지요. 그런 자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져집니다.
20절은 포도주 틀을 밟았는데 거기서 나오는 것이 포도주가 아니고 “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피가 어느 정도 흘렀다고 하냐면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고 하는데, 280-320km입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얼마나 무섭고 혹독한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계시록 등장하는 숫자는 의미가 있습니다. 1600은 4×4×10×10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4는 사방 즉 온 세상을 의미하고, 10은 세상 왕들과 관련된 숫자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숫자는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짐승을 따른 온 세상 사람들을 의미하며,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이 땅의 왕으로 하나님께 도전하고 성도들을 박해했던 황제들에 대한 심판을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반드시 이런 날이 옵니다. 땅의 삶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금, 매일의 삶이 그 날을 준비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땅에 속해 살므로 잠깐 기쁨은 누리지만 영원히 쉼을 얻지 못하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믿음을 지키다 죽음에 이를수도 있지만 수고를 그치고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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