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7절)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런데 6-7절은 계시록의 서론인 1장과 비슷한 구절들이 나옵니다. 이처럼 서론과 결론에 반복되는 내용이 계시록의 강조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6절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라고 하는데 1:1절은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은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입니다. 용과 짐승의 패배와 어린양의 승리가 오지 않을 것 같지만 약속의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내가 속히 오리라”로 이어집니다. 이 말씀이 오늘 본문에 세 번 반복됩니다(7,12,20). 이것을 반복해서 강조하시는 이유는 당시 성도들의 기도를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고난이 언제까지입니까?, 언제 주님 오셔서 완전한 승리를 주십니까?”라고 기도했는데 주님은 “내가 속히 오리라!”로 응답하십니다.
그런데 당시도 “속히”오신다고 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까지 주님은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거짓말을 하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는 언제든지 주님이 오실 수 있는 때입니다. 이것을 말세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말세지말, 즉 주님 오심이 더욱 가까워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니 근신함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7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입니다. 이 말씀 역시 서론인 1:3절에 나왔던 말씀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1:3절은 읽고, 듣고, 지키라고 했다면 22:7절은 “지킴”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박해와 위협 속에서도 신실하게 믿음의 길을 걷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진정한 복은 핍박이 없고 문제없는 삶이 아닌 고난 속에서도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말씀을 지키는 삶이라고 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0절)
8-15절은 계시록의 핵심을 정리합니다. 첫째는 “하나님만 경배하라”입니다(9절). 요한은 말씀을 전해주는 천사에게 경배하려 합니다. 그러자 천사가 만류하면서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내용이 19:10절에도 나왔습니다. 당시 성도들에게 이 내용이 중요했다는 겁니다. 하나님 말고 다른 것에 대한 경배 위험이 있었습니다. 천사숭배 사상도 있었다고 하고, 황제숭배도 강요했습니다. 그런 시대 속에서 오직 경배의 대상은 하나님 한분 뿐이십니다. 지금 시대도 경배를 받으려는 것들이 많습니다. 돈이, 사람이, 과학 기술이 그렇습니다. 이런 시대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고 하나님만 예배합시다.
두 번째는 13절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하십니다. 시작과 마침이라는 같은 내용을 세 번 반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역사와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십니다. 불안하고 어두운 현실이지만 이것 역시 주관자되시는 하나님의 손길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승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루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14절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라고 합니다. 앞에서는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면 여기는 옷을 빠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옷을 빤다는 것은 매일 자신을 말씀으로 돌아보며 죄를 고백하고 성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말합니다. 큰 성 바벨론 속에서 세상 정신을 따라 살지 않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입니다.
16절에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설명합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라고 합니다.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계시록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런데 말씀을 주시는 예수님이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인 것을 알겠는데, “다윗의 뿌리”라고 하십니다. 다윗은 근원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십니다. 그러니 다윗의 근원이 되십니다. 이 주님께서 교회를 위하십니다.
또한 “광명한 새벽별”입니다. 당시 어둠이 짙습니다. 아침이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반드시 어둠 가운데 빛을 비춰주시고 밝은 새벽이 오게 하십니다.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게 하시고 승리를 주십니다. 그러니 신부인 교회로 나오는 자들만이 목마른 영혼에 생명수를 공급받습니다. 참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말씀을 마치며 경고의 말씀도 주십니다. 예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 자들에게 재앙을 더하실 것이라 하십니다. 계시록의 말씀에 내가 본 천국과 같은 신비한 이야기를 덧붙여서 말씀의 의미를 변질시켜서는 안됩니다. 성도들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해 말씀을 이용해서도 안됩니다. 또한 예언의 말씀을 제하여서도 안됩니다.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순종하기 힘든 내용은 외면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말씀을 우리 삶에 중심에 두고, 잘 읽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며 순종하는 삶이 복된 삶입니다.
20절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님은 “속히 오신다”고 다시 한번 말씀하시며 위로하십니다. 성도들은 이 약속을 확신하면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로 화답합니다. “마라나타”입니다. 이 말이 당시 성도들의 인사였다고 합니다. 고난 속에서도 주님의 오심을 확신하며 믿음과 인내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주님 말씀하십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기대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주님 오시지 않을 것처럼, 아니면 지금 말고 나중에 오셨으면하는 삶은 아닌지 돌아보면서 매일 “마라나타”의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시며, 예수님은 “광명한 새벽별”이 되십니다. 모든 것 주관하시며 반드시 찬란한 새벽을 열어주실 것을 확신하며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는 삶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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