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6:1-15절/이같이 되리라(25.08.11)

2025.08.11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북쪽에서 내 영을 쉬게 하였느니라 하더라”(8절)

​스가랴가 본 마지막 여덟 번째 환상입니다. 그동안 보았던 환상을 잠깐 정리하면, 첫 번째는 화석류나무 사이 붉은 말을 탄 사람의 환상입니다. 두 번째는 네 개의 뿔과 네 명의 대장장이, 세 번째는 측량줄을 손에 잡은 자, 네 번째는 대제사장인 여호수아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심, 다섯 번째는 순금 등대와 두 감람나무, 여섯 번째는 날아다니는 두루마리, 일곱 번째는 에바 속 여인 환상이었습니다. 이 환상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강조하면서, 그 시작인 성전 건축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그 중심에 중요한 두 사람인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이 스룹바벨이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본문의 마지막 환상에는 네 병거가 등장합니다. 두 산 사이에서 병거가 나오는데 특이한 것은 그 산이 “구리산”입니다. 이것은 아침 햇살이 산에 비친 모습을 말합니다. 새벽 빛이 비치고 있다는 겁니다. 어둠이 걷히며 아침이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의 아침을 열어주십니다.

병거를 모는 말들이 붉은 말들, 검은 말들, 흰 말들, 그리고 어룽진 말들입니다. 스가랴는 이것이 무엇인지를 천사에게 묻습니다. 5절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새번역은 “그 천사가 나에게 대답하였다. 그것들은 하늘의 네 영이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을 뵙고서, 지금 떠나는 길이다.”로 번역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네 바람”은 “네 영”이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이루는 여호와의 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명을 받은 후 그 일을 이루기 위해 떠나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아무리 현실이 어두워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여전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서 일하고 계시며 머지 않아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이 중 검은 말이 북쪽을 향합니다. 흰 말도 그 뒤를 따릅니다. 어룽진 말은 남쪽을 향합니다. “네 바람”이 등장했기에 우리는 말들이 동서남북으로 가지 않을까 짐작하는데 향하는 곳이 북쪽과 남쪽입니다. 물론 7절을 보면 “땅에 두루 다닌다”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어느 곳도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난 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8절 보면 특히 북쪽에 집중합니다.

이들이 북쪽과 남쪽을 집중적으로 향하는 이유는 이곳에 강대국들이 자리하고 있고 그러기에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이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쪽은 바벨론이 통치하고 있습니다. 남쪽은 애굽이 다스리고 있습니다. 바벨론에는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병거들이 향한다는 것은 강대국들을 심판하고 그곳에 머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8절은 “북쪽에서 내 영을 쉬게 하였느니라 하더라”고 표현합니다. 새번역은 “북쪽 땅에서 내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다”로 번역합니다.

이 마지막 환상은 첫 번째 환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붉은 말을 탄 자가 등장하고 다른 말들이 등장해서 세상을 두루 다닙니다. 그리고 전하는 내용이 1:11절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고 했습니다. 세상이 평안하고 조용하면 좋을 것 같은데, 1:12절은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라고 부르짖습니다. 즉 강대국의 평안은 이스라엘과 같은 나라들의 고통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강대국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 돌아보십니다.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13절)

​이렇게 바벨론에서 돌아온 자들의 이름이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입니다. 이들이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들어가 은금을 모아서 면류관을 만들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웁니다. 이 내용이 14절에도 다시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름이 좀 다릅니다. “헬렘과 도비야와 여다야와 스바냐의 아들 헨”으로 되어 있습니다. “헬대가 헬렘, 요시아가 헨”으로 되어 있는데 아마 별명이 사용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내용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로 하나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자들과 지금까지 고국에 머물던 자들 사이 갈등이 있을 수 있는데 이들이 함께 면류관을 만듭니다. 더 나아가 15절은 “먼 데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니”라고 합니다. “먼 데 사람들”은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방인들까지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하나가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이들이 만든 면류관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워집니다. 이것은 영광과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3장에서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어쩌면 대제사장을 향한 백성들의 마음이 그랬을 수 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대제사장이 과연 성전 직무를 잘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시고 정결한 관을 씌워주셨는데, 여기서는 백성들이 함께 만든 면류관을 씌워주며 영광을 회복시켜 줍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더불어 중요한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12절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싹”이 다시 등장합니다. 보통 메시아에 대한 표현으로 이해하는데 여기서는 분명하게 성전을 건축하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싹”은 일차적으로 스룹바벨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13절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고 합니다. 성전 건축과 이후 이스라엘이 회복되는데 두 사람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되어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며 함께 일해야 합니다. 그래서 4장에서는 순금 등대로 상징되는 성전이 두 감람나무(여호수아와 스룹바벨)를 통해서 기름을 공급받는 환상이 등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가랴는 15절 하 “너희가 만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진대 이같이 되리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대해야 합니다.

​아무리 현실이 어두워도 하나님은 반드시 새벽을 여십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하나님은 일하시며 뜻을 성취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신뢰하며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큰 일을 기대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되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길 기뻐하십니다. 많은 차이와 다름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될 때 다름이 오히려 공동체를 더 아름답고 풍성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순종을 통해 이루어짐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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