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크게 요란하게 하시리니”(13절)
스가랴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쉽지 않은 말씀을 묵상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회복과 또한 회복된 백성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14:2절에서 하나님은 이방 나라들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셨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정결케 되고 예루살렘은 새롭게 회복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며 생수가 흘러 넘쳐 온 세상으로 향하는 곳이 됩니다.
예루살렘 회복의 날은 이방 나라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12절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은”이라고 시작됩니다.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이방 나라 사용해서 예루살렘 공격하게 하시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이방 나라에 재앙을 내리시는 것이 옳은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심판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심판입니다. 14장은 여러 번 하나님의 “왕”되심을 선포합니다. 9절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16,17절은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가 반복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왕이십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자신들이 왕이 되어 거대한 세상을 만들고 주도했습니다. 그들이 만든 세상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12절의 하나님이 내리시는 재앙의 결과로 반복되는 말이 “썩는다”입니다. 범죄한 후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아담에게 하나님은 창3:19절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겉으로 화려하고 거대해도 그곳은 죽음의 장소입니다. 또한 13절 “피차 손으로 붙잡으며 피차 손을 들어 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기도 하지만 자신들끼리 피차 죽고 죽이는 정글의 세상입니다. 스스로 파멸을 길을 걷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없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반면 예루살렘은 비록 작고 초라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생명이 가득한 도성이 됩니다. 하나님은 14절 보면 유다도 예루살렘에서 이방 나라들과 전쟁하는 가운데 많은 전리품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많은 재물을 얻는다는 말이 아니라 1절에서는 죄악된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에 의해 재물이 약탈되고 나누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로 회복과 승리가 주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반드시 이런 역전의 날이 올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20절)
이렇게 이방 나라가 심판을 당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데, 16절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처럼 돌아오는 소수의 사람에게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하나님은 재앙을 한꺼번에 쏟지 않으시고 서서히 강도를 높이십니다. 믿지 않던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의 은혜를 누리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도 이방 나라 중에 소수의 남은 자들이 해마다 예루살렘에 올라와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고 합니다. 그 경배의 대상이 “그 왕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지나면서 초막, 즉 텐트에서 생활하던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또한 초막절을 지키는 때는 가을 추수하고 감사하는 때로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통해 풍성한 결실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절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는 절기들 가운데 가장 성대한 절기입니다. 이처럼 초막절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에 감사하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반면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않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않으시고 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왕이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어떤 마음과 자세이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십자가 사랑으로 구원해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 힘으로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데 광야 같은 세상 하나님께서 늘 보호하시고 인도하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전심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20절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말은 대제사장이 머리에 쓰는 관에 새겨진 글씨입니다.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봉사할 때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글귀가 이제는 “말 방울”에까지 기록될 것이라고 합니다. 말은 부정한 짐승입니다. 그런 말의 방울에 까지 기록된다는 의미는 이제 성전만이 아닌 모든 곳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거룩한 곳이요, 그러기에 모든 곳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다시 솥 이야기를 통해 설명합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구별된 솥으로만 제물을 삶았다고 한다면, 이제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여호와의 성물이 되어 고기를 삶을 수 있게 됩니다. 이제는 성과 속의 구별이 없이 모든 곳에서 거룩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21절 하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고 하는데 “가나안 사람”은 장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이 있었고, 성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가 아닌 사람들이 자기 욕망을 채우는 장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종교지도자들의 허락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성전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뒤집어 엎으시고 정결케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성전이 온전히 하나님을 예배하며 기도하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만이 생명이십니다. 이 생명에서 떠나면 화려하고 거대해도 죽음입니다. 하나님만 왕이십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고 하나님만 경배하는 삶이 복된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거룩을 원하십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내야 하겠습니다.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