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1절)
느헤미야 7장은 11장으로 연결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7장 내용은 성벽을 건축한 후 예루살렘 안에 거주하는 백성이 적어(4절)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성들을 계보대로 등록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11장은 제비를 뽑아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이주시킵니다(11:1절). 그렇다면 8-10장은 7장과 11장 사이에 의도적으로 들어가 있는 부분입니다.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내용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내용이 언제 있었던 사건인지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있습니다. 갑자기 에스라가 등장하기 때문에 2차 귀환 후 일어났던 일을 이곳에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느헤미야의 흐름을 따라 성벽 재건 후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보면 에스라와 느헤미야서를 통해 성경 저자가 강조하는 내용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스룹바벨 중심 성전 건축(스1-6장), 에스라 중심 신앙 건축(스7-10장), 느헤미야 중심 성벽 건축(느1-7장), 에스라 중심 신앙 건축과 언약 맺음(느8-10장)입니다. 이 순서에 따르면 외형적으로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적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신앙회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성벽 건축을 마친 백성들이 일곱째 달에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와 낭독해주기를 요청합니다. 일곱째 달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한 해를 시작하는 달이며 여러 절기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율법을 낭독하는 초하루는 나팔절로 한 해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10일에는 속죄일이 있고, 15-21절은 초막절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한 해를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특이한 것은 이 말씀 운동이 지도자들의 주도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요청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백성들의 마음에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성벽 재건의 과정에서 내외부 적으로 많은 문제들이 있었는데 말씀으로 돌아가야 함을 절실히 깨달은 듯합니다.
수문 앞 광장에 많은 백성들이 모여 새벽부터 정오까지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한마디로 말씀 사경회,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2절과 3절에서 두 번 반복되는 말이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입니다. 말씀이 낭독되는 것도 귀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을 알아듣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성경이 우리 각자에게 주어져있고 말씀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들을 귀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면 안 되고 7절과 8절에서 또 두 번 강조하는 것이 “그 뜻을 해석하여 … 다 깨닫게 하니”입니다. 낭독하는 말씀을 바르게 해석해서 바르게 깨닫게 합니다. 이 과정이 필요했던 것은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백성들은 아람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긴 포로 생활 동안 히브리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백성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이 해석해서 바르게 깨닫게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르게 해석해서 바르게 깨닫는 것이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 12절과 13절에 반복되는 것은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입니다. 말씀을 계속해서 밝히 알아갑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절기를 지킵니다. 그렇다면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알아 듣는 것이 필요하고 다음은 해석을 통한 깨달음이 필요하며 계속해서 밝히 알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어느 과정에 머물러 있습니까?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10절)
많은 백성들이 모인 광장에 에스라가 나무 강단에 섭니다. 율법의 두루마리를 펼 때 모든 백성이 일어섭니다. 하나님과 말씀에 대한 경외의 표현입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을 송축하자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으로 화답하며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이 광경을 상상해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지만 숨죽은 듯 조용합니다. 에스라의 입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활짝 열고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마음에 새깁니다.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율법의 말씀을 들은 백성들은 눈물을 흘립니다. 말씀을 통해서 지난 온 시간들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들의 마음속에 의문이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고난을 겪어야 하는가? 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하나님의 성전은 무너졌는가? 왜 이방 땅에서 긴 시간 포로 생활을 해야 했는가?” 그런데 말씀을 통해 이해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돌아와 성전과 성벽을 건축한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의 눈물과 감사의 눈물이 함께 흐릅니다. 어쩌면 광장이 울음바다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러자 지도자들이 권면합니다. 9절 하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고 합니다. 이제 과거의 슬픔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기쁨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미래로 나아가자고 합니다. 그래서 10절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그렇습니다. 성도의 진정한 힘은 하나님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모든 백성이 크게 즐거워합니다.
말씀을 밝히 깨달으니 일곱째 달에 초막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절기를 지키되 형식적 습관적으로 지켜서는 안 되고 온전하게 지켜야 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초막을 만들고 절기를 지킵니다. 초막절은 과거 출애굽 후 광야 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이전에도 분명 초막절을 지켰을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절기의 의미를 깨닫고 온전하게 지킴으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벅찬 감격을 누립니다. 이것을 17절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라고 표현합니다. 은혜와 감동의 절기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밝히 알고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우리에게는 이처럼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말씀으로 인한 감격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습관과 의무가 아닌 말씀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순종하므로 큰 기쁨과 힘을 얻는 삶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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