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3절)
10장은 9장 내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9장에서 예수님은 날 때부터 맹인 되었던 사람을 고쳐주신 사건을 통해, 육신의 눈은 떴으나 영적으로는 맹인인 바리새인과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을 지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10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르게 인도해야 할 종교 지도자들이 참된 목자가 아닌 거짓 목자임을 밝히시며 예수님 자신이 ‘참된 목자’이심을 설명하십니다. 당시 많은 백성들이 길잃은 양과 같이 방황했던 이유는 바로 목자가 되어주어야 할 종교지도자들의 잘못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에스겔 34장을 배경으로 합니다. 하나님은 당시 지도자들의 문제점을 지적하십니다. 2-3절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은 한 목자를 세우시겠다고 합니다. 겔34:23절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선한 목자가 되실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양의 우리와 목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중동 지역에서는 밤이 되면 여러 주인의 양들을 하나의 우리에 모아두고 문지기가 지킵니다. 아침이 되어 문을 통해 당당히 들어가는 이가 참 목자이며, 울타리를 넘어가는 자들은 절도며 강도입니다. 참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해 내고, 앞서 걸어가며 양들을 이끕니다. 실제로 목자들은 양들의 숫자가 많아도 이름을 알고 부른다고 합니다. 또한 양들도 앞서가며 부르시는 목자의 음성을 알고 그 뒤를 믿고 따라갑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를 잘 아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항상 함께 하시면 우리의 길을 인도해주십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모두는 ‘양’이라는 사실입니다. 양은 자신의 힘을 키움으로, 자신의 지식을 쌓음으로, 자신의 지위를 높임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없습니다. 어떤 목자를 만나느냐가 삶과 죽음을 결정합니다. 예수님만 목자로 삼고 예수님의 음성을 따라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9절)
바리새인들이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자,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양들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는 ‘양의 문’이심을 구체적으로 밝히십니다. 화재 현장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반드시 문을 찾아야 하듯, 죽음이 도사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유일한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9절에서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선언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하십니다. 10절에 보면,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지만, 예수님이 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는 이단이나 우리를 이용하려는 거짓 목자들의 달콤한 유혹이 많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님의 음성,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묵상하며 순종하여 따라갈 때에만 우리는 멸망의 길이 아닌 풍성한 생명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11절)
이어서 예수님은 두 번째로 “나는 선한 목자라”고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선한 목자와 삯꾼 목자의 가장 큰 차이는 위기의 순간에 나타납니다. 삯꾼은 이리가 오면 양을 버리고 도망가지만,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립니다. 반복되는 말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입니다(11,15,17,18).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양 몇 마리를 지키기 위해 목자가 죽는다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행동처럼 보입니다. 양 수백 마리가 죽어도 목자는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18절에서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고 하시며, 양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세상의 가치로 양을 계산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 목숨처럼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창세 전부터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이 누리셨던 완전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됨처럼 우리를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양과 같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스스로 생명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16절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라고 하십니다. 여기 다른 양들은 장차 복음을 듣고 주님게 돌아올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 막힌 담을 허시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 모든 자들이 하나가되는 구원의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관심은 잃어버린 양들입니다. 그리고 한 마리의 양을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버리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이 사랑을 받아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 우리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버리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이 바로 나의 선한 목자이심을 기억합시다. 세상의 복잡하고 유혹하는 소리들을 뒤로하고, 내 이름을 아시고 나를 푸른 초장으로 앞서 인도하시는 주님의 음성에만 귀 기울이며 순종하는 풍성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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