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34절)
성경에서 가장 솔직한 가정 이야기 중 하나가 창27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 그 이삭의 가정 이야기인데, 읽다 보면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입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큰아들을 편애하고, 어머니는 작은아들을 위해 남편을 속이고, 형제는 서로 원수가 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 뒤죽박죽인 가정 이야기 속에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긴장감 있게 시작됩니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 형의 축복을 가로채고 막 나가자마자, 형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온 것입니다.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모든 것이 드러났을 텐데, 딱 그 간격이 맞아떨어졌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에서는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에게 별미를 들고 들어와 말합니다. 31절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아버지 이삭은 당황하여 묻습니다. “너는 누구냐?”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아들이 맏아들 에서라는 사실에 이삭이 크게 떨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 당시 아버지의 축복은 단순한 덕담이 아니었습니다. 한번 쏟아부으면 되돌릴 수 없는, 신적 권위가 담긴 선언이었습니다. 이삭은 모든 축복을 야곱에게 쏟아부었고, 에서를 위한 자리는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에게 축복을 해주었다는 아버지의 말에 에서가 소리를 높여 웁니다. 34절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사냥도 잘하고 남자답기로 유명한 에서가 복을 받지 못해 엉엉 웁니다. 오늘 본문에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가 ‘복’, ‘축복’입니다. 12번 정도 나옵니다. 야곱도 에서도 복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에서는 야곱이 자신을 두 번이나 속였다고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한 번은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고, 이번엔 아버지의 축복을 빼앗았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야곱이 속임수를 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야곱이 팥죽으로 장자의 명분을 가져가려 했을 때, 에서는 스스로 그것을 팔았습니다. 당장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이제 와서 눈물을 흘리지만, 그 소중한 것을 처음부터 소중히 여기지 않은 사람은 에서 자신이었습니다.
오늘 이 장면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것,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과 특권을 우리는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세상의 급한 요구 앞에 우리가 매일 내어주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봅니다.
●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42절)
자신이 받아야 할 축복을 빼앗긴 에서는 동생을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되면 야곱은 죽게되고 에서는 살인자가 되어 평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45절 하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의 의미입니다. 이렇게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계획할 때 등장하는 사람이 리브가입니다. 리브가는 매번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합니다. 야곱을 불러 하란에 있는 외삼촌 라반에게 가게 합니다. 형의 화가 풀리면 사람을 보내 데려오겠다고 합니다.
리브가는 44절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이라고 말하며 ‘몇 날’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몇 날’이 20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다시는 야곱을 보지 못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신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과, 그것을 내 방법으로 이루려 서두르는 것은 다릅니다. 리브가의 앞서가는 마음이 아들에게 20년의 긴 타향살이를 안겨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내 방법으로 빨리 이루려는 마음, 우리 안에도 그런 마음이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실수투성이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고, 리브가는 속임수를 택했고, 야곱은 탐욕스러웠으며, 에서는 소중한 것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이야기를 가감 없이 기록합니다. 왜일까요? 믿음의 가정도,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의 공동체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솔직히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가신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뒤죽박죽인 이 가정을 통해, 야곱을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가십니다. 속임수로 복을 차지하려 했던 야곱이 20년의 연단을 통해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가정의 혼란이, 형의 위협이, 타향에서의 고된 세월이 모두 그 과정이었습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가정이 온전치 못하고, 내 인생이 제대로 되는 게 없는 것 같을 때, 우리가 집중해야 할 곳은 우리의 연약함이 아닙니다. 그 연약한 우리를 붙드시고, 그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신실한 하나님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두 가지를 기억합시다. 첫째,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에서처럼 당장의 필요 앞에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과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둘째, 하나님의 뜻을 내 방법으로 앞서가려 하지는 않는가? 리브가처럼 좋은 의도라도 하나님보다 앞서 나가는 것이 오히려 더 큰 혼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에, 우리의 뒤죽박죽인 오늘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