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6절)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고향인 브엘세바에서 출발한지 며칠 되지 않아서 돌을 베개 삼아 누운 그 외진 곳에서 하나님이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창28:15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어디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오늘 29장은 그 만남 이후 야곱의 발걸음으로 시작됩니다.
1절 보면 “야곱이 길을 떠나”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 ‘길을 떠났다’는 표현이 원어로 ‘두 발을 들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어제까지 두렵고 무거웠던 발이, 이제는 가볍게 들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힘입어 확신에 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과 후, 같은 길이지만 발걸음이 달라졌습니다. 우리 인생의 발걸음이 무겁습니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고 신뢰해야 할 때입니다.
야곱은 하란이 속한 동방 사람의 땅에 도착했습니다. 목적지는 외삼촌 라반의 집이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넓은 서울, 어느 곳에 사는 외삼촌을 내비게이션 없이 찾아가는 상황입니다.
마침 우물가에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야곱이 어디서 왔는지 묻습니다. 놀랍게도 야곱의 목적지인 하란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라반을 아느냐고 묻습니다. 그들이 잘 알고 있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당연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놀라운 일입니다. 동방이라는 넓고 넓은 낯선 땅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외삼촌을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목자들은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6절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야곱이 외삼촌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었습니다. 외삼촌의 딸이 먼저 야곱에게로 오고 있었습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내가 애써 찾아 헤매야 할 것들이 때로 내게로 걸어오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사실 사람을 찾는 일은 며칠 걸려도 우리 힘으로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힘으로 안 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일들이 그렇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안됩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을 하나님은 순간에 해결하시기도 하십니다. 오랫동안 막혔던 문제들을 하나님께서 손대시면 순식간에 열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붙잡고 씨름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게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로 맡길 때, 하나님이 하시면 문제가 문제가 아니게 됩니다.
●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11절)
구약에서 우물은 자주 결혼 이야기의 무대가 됩니다.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갔던 아브라함의 종도 우물에서 리브가를 만났습니다. 오늘도 우물가에서 야곱이 자신의 아내가 될 라헬을 만납니다. 본문에는 우물이 큰 돌로 덮여 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그 지역에서 물은 생명과 같았고, 그 귀한 우물을 아무나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여러 목자들이 힘을 합쳐야만 옮길 수 있는 큰 돌로 막아두었습니다.
그런데 10절을 보면 라헬이 양떼를 몰고 오는 것을 본 야곱이 혼자서 그 돌을 옮겼습니다. 본문은 담담하게 기록하지만,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난 기쁨, 하나님이 이렇게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야곱에게 없던 힘을 솟아나게 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야곱이 첫눈에 라헬에게 반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라헬 앞에서 야곱은 생각지도 못한 힘을 냅니다. 야곱의 인생에 새로운 일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라헬을 만난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 머물게 됩니다. 한 달을 함께 지내며 지켜본 라반이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15절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야곱은 열정적이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입니다. 라반은 그것을 알아봤고 야곱이 자신과 함께 머무는 것이 유익이라고 생각하여 이런 제안을 합니다.
야곱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18절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그 당시 신부를 맞이할 때 지참금을 치르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당시 노동자 1년 임금이 5-10세겔이었고, 보통 신부 지참금은 30-50세겔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제시한 7년은 상당히 후한 약속이었습니다. 그만큼 야곱이 라헬을 사랑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20절, 오늘 본문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7년을 며칠처럼. 사랑이 있으면 긴 시간도 짧게 느껴진다는 말이지만, 동시에 이것은 야곱이 얼마나 소망을 붙들고 살았는지를 보여줍니다. 기다리는 것이 있는 사람은 다르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복선이 담겨 있습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품삯을 받는 순간, 가족 관계가 고용 관계로 바뀝니다. 그리고 이 외삼촌 라반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라반에 의해 야곱은 혹독한 훈련을 하게 됩니다.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보다 훨씬 더 강한 사기꾼 외삼촌 라반을 통해 야곱을 훈련시키십니다. 앞으로 야곱이 라반에게 당하는 과정에서 야곱은 자신이 가족들에게 주었던 상처가 얼마나 깊은 것이었는지를 몸으로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훈련은 때로 내가 했던 일의 무게를 직접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찾아옵니다. 힘들지만, 그 과정이 야곱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갑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온전치 못함을 같은 방식으로 다듬어가십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면, 더 강한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잘못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지요.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쉽지 않지만 말씀의 기준으로 살아갈 때 겪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겪지 않고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의 발걸음이 벧엘 이전과 이후에 달라진 것처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우리 하루를 바꿉니다. 오늘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찾아야 할 신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올 때 야곱처럼 무거운 돌도 옮기고, 긴 시간도 며칠처럼 지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내 힘으로 안 된다고 느끼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맡겨보십시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내가 찾아 헤맬 것들이 때로 나에게 걸어오기도 합니다.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