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29:21–35절/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26.04.23)

2026.04.23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25절)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외삼촌 라반을 위해 일한 7년을 며칠처럼 여겼습니다. 드디어 7년의 기한이 차서 외삼촌 라반에게 말합니다. 21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라반은 잔치를 베풀었고, 야곱은 기뻤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야곱이 눈을 떠보니, 자기 곁에 누운 사람은 사랑하는 여인 라헬이 아닌 언니 레아였습니다.

야곱이 분노하며 외삼촌에게 따집니다. 25절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그런데 이 모습은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라반이 레아를 야곱에게 데려간 시간이 ‘저녁’이었다고 합니다(23절). 어두울 때였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였던 것도 바로 그 아버지의 눈이 어두웠을 때였습니다(27:1절). 어두움을 이용해 속였던 자가, 이제 어두움 속에서 속임을 당합니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일 때 형의 옷을 입고 염소 가죽을 몸에 붙여 자신을 위장했듯이, 레아도 어쩌면 면사포를 쓰고 어둠 속에서 라헬인 척 야곱에게 들어갔을 것입니다. 방식이 너무 닮아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우연으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야곱이 심은 것을 야곱이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라반은 말합니다. 26절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형이 먼저라는 말, 순서가 있다는 말이 야곱의 가슴에 어떻게 들렸을까요. 야곱은 형 에서의 순서를 빼앗았던 사람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지만 그것을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자신의 욕망대로 차지하려 했던 사람입니다. 이 한마디가 지난 모든 것을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 27절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야곱은 결국 라헬을 위해 다시 7년을 섬깁니다. 처음 7년에 속은 7년, 도합 14년의 세월입니다.

야곱이 형과 아버지를 속인 것은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가는 14년이라는 긴 시간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14년 동안 야곱은 자신이 타인에게 주었던 상처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몸으로 배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연단은 이렇게 찾아옵니다. 우리가 뿌린 것의 무게를 우리가 직접 느끼게 하는 방식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첫 번째 메시지가 여기 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 야곱이 속임을 심었더니 속임을 거뒀습니다. 이것은 무서운 말이기도 하지만, 뒤집으면 소망의 말이기도 합니다. 진실을 심으면 진실을 거두고, 사랑을 심으면 사랑을 거두고, 섬김을 심으면 섬김을 거둡니다. 오늘 하루 내가 무엇을 심는지가 중요합니다.

●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32절)

야곱의 가정은 이제 온전하지 않습니다. 두 아내가 있는데, 야곱은 레아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31절 “사랑받지 못함”이라고 표현하는데, 원래 뜻은 ‘미워함’에 가깝습니다. 어쩌면 레아를 볼때마다 자신의 인생이 레아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레아도 억울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원해서 이 자리에 온 것도 아닌데,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가정도 온전하지 않았는데 야곱이 이루는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모든 연약함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변함없이 이루어가십니다.

야곱의 사랑을 받는 라헬이 행복할 것 같은데 31절은 의외의 문장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야곱이 레아를 외면했지만, 하나님은 레아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레아는 아들을 낳을 때마다 이름을 지으며 그 마음을 드러냅니다. 첫아들 르우벤을 낳고는 32절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라고 합니다. 남편의 사랑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둘째 시므온을 낳고는 33절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시므온은 ‘들으심’이라는 뜻입니다. 내 아픔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고백입니다. 셋째 레위를 낳고는 34절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라며 여전히 남편을 향한 소망을 붙잡습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그런데 넷째 유다를 낳을 때 레아의 고백이 달라집니다. 35절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더 이상 남편 이야기가 없습니다. 사람에게서 위로를 구하던 레아가, 이제 하나님 앞에서 찬양하는 자리에 선 것입니다.

이 변화가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단한 신앙의 성장입니다.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리까지 걸어온 것입니다. 레아는 환경이 바뀌어서 찬양한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상황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신을 보고 계시다는 것, 들으신다는 것, 돌보신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고백이 사람을 향한 갈망에서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바뀐 것입니다. 물론 완벽하지 않습니다. 다시 동생과 자녀 낳기 경쟁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금씩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성장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레아에게서 유다가 태어납니다. 사랑받지 못했던 레아, 그러나 하나님을 찬송하기로 한 레아의 아들 유다의 후손으로 다윗이 태어나고, 그 계보를 따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자리에서, 사람이 외면하는 그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이루어 가시는 분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경고입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무슨 말을 심는지, 어떤 마음을 품는지가 결국 내게 돌아옵니다.

다른 하나는 위로입니다. 사람이 나를 외면해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레아처럼 억울하고 답답한 자리에 있다면, 하나님이 그 자리를 보고 계십니다. 그 고통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기로 선택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생각지도 못한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 진실을 심고, 사랑을 심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0개의 댓글

댓글 제출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