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31:17–35절/드라빔을 버려라(26.04.27)

2026.04.27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24절)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의 행렬이 출발합니다. 혼자 떠났던 길을 이제 아내 넷, 자녀 열한 명, 그리고 그동안 모은 가축과 재물을 이끌고 돌아갑니다. 20년 전을 생각해 보면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 고향을 떠났을 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두운 밤 돌을 베개 삼아 누운 그 자리에서 마음은 두렵고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그 밤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 약속하셨습니다. 28:15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야곱의 가정이 평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속고 속이고, 시기하고 경쟁하며, 두 자매가 자녀 낳기 경쟁을 벌이는 혼란스러운 20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약속하신 것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이루어 가셨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말하지 않고 몰래 떠납니다. 라반의 눈빛이 예전 같지 않았고, 아들들의 태도도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를 기다렸습니다. 마침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멀리가서 자리를 비웠습니다. 야곱은 이때가 도망칠 절호의 기회라 여기고, 가족과 모든 재물을 이끌고 조용히 길을 나섭니다.

그런데 이때 라헬이 아버지 라반의 ‘드라빔’을 몰래 훔쳐 낙타 안장 밑에 감췄습니다. 드라빔은 가정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작은 우상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집집마다 두는 부적이나 수호신 같은 것입니다. 라반이 이 드라빔을 굉장히 소중히 여겼다는 것은, 뒤에서 라반이 야곱을 추격하며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것이 드라빔인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라헬은 왜 이것을 훔쳤을까요? 먼 길을 떠나는 불안함 속에서, 하나님보다 이 드라빔이 자신과 가족, 그리고 미래를 더 확실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손에 잡히는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 본문 바로 앞 16절에서 라헬은 “하나님이 …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고 하며 겉으로는 하나님을 따른다고 했습니다. 신앙의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손에는 드라빔을 쥐고 있었습니다. 입으로 하는 고백과 실제로 의지하는 것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 라헬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보이는 무언가를 더 붙들고 싶어 하는 것, 이것이 우리 모두의 연약함입니다.

라반은 3일이 지나서야 야곱이 사라진 것을 알았습니다. 분노한 라반이 형제들을 데리고 야곱을 추격합니다. 무려 7일을 달려 길르앗 산에서 야곱을 따라잡습니다. 야곱은 가족과 짐을 이끌고 있고, 라반은 형제들과 함께 무기를 들고 왔습니다. 라반이 나중에 스스로 고백하는 말이 29절에 있습니다.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이 말이 라반의 진짜 의도를 드러냅니다. 이대로 야곱을 만났다면 큰 해를 당했을 것입니다. 야곱에게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위기의 순간을 단 한 절로 정리합니다. 24절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하나님이 한 번 나타나시자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형제들을 이끌고 야곱을 해하러 달려왔던 라반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 순간 우리는 분명하게 보게 됩니다. 라헬은 드라빔을 숨기고 있지만, 야곱의 가정을 실제로 지킨 것은 드라빔이 아니었습니다. 20년 전 베델에서 “내가 너를 지키겠다”고 약속하셨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라반의 손을 막으셨습니다. 드라빔은 그 어두운 밤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 “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34절)

라반이 드라빔을 찾겠다며 야곱의 장막들을 샅샅이 뒤집니다. 레아의 장막, 두 여종의 장막을 다 뒤졌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라헬의 장막에 들어갔을 때, 라헬은 이미 드라빔을 낙타 안장 밑에 깊이 숨기고 그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35절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라반은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갑니다.

성경이 이 장면을 자세히 기록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문화적으로 이 상황이 얼마나 불경스러운 것인지를 독자들은 알았습니다. 가정을 지켜준다는 드라빔이 지금 여인의 안장 밑에 깔려 있습니다. 그것도 제의적으로 부정하다는 생리하는 여인이 앉은 안장 아래에 숨겨져 있습니다. 이것이 드라빔의 실체입니다. 사람을 지킬 수 없고, 자신을 숨겨준 사람도 지킬 수 없으며, 심지어 자기 자신이 발견되지 않게 막을 힘조차 없습니다. 성경은 이 장면을 통해 우상의 무능함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드라빔을 의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웃음과 함께 보여주는 것입니다.

라헬이 드라빔을 낙타 안장 밑에 숨겼듯, 우리도 겉으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드라빔을 하나씩 숨겨두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돈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사람의 능력이나 인맥이 나를 안전하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 지위나 건강에 대한 과도한 의존. 이것들이 현대판 드라빔입니다.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삶이 흔들리지 않는 동안에는 우리가 진짜 무엇에 기대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면 드러납니다. 위기가 장막을 뒤집을 때, 우리가 하나님보다 무엇을 먼저 붙들고 있었는지 보이게 됩니다.

야곱의 가정은 혼란스럽고 부족했습니다. 속고 속이고, 시기하고 경쟁했습니다. 그 가운데 드라빔까지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가정을 끝까지 지키셨습니다. 20년 전 벧엘에서 하신 약속 한마디가, 라반의 손을 막고, 야곱을 고향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조용히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내가 말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면서, 손에 꼭 쥔 드라빔이 있지 않는가? 드라빔은 우리를 지킬 수 없습니다. 약속하시고 반드시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그 드라빔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붙드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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