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4절)
에서라는 인생의 문제를 앞두고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름을 바꿔주셨습니다. 발꿈치를 붙잡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을 이긴 자의 정체성, 즉 ‘이스라엘’로 살아가라 하셨습니다. 야곱의 겉모습은 허벅지 관절이 부러져 나빠졌지만 야곱의 내면에는 소망의 빛이 비추었습니다. 그렇게 맞이한 아침 눈을 들어보니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모든 불안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졌다고 에서가 자신을 선의로 대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에서를 보는 순간 야곱 과거의 모습이 나옵니다.
야곱은 아내들과 자녀들을 단계별로 배치합니다. 여종과 그 자녀들을 맨 앞에, 레아와 그 자녀들을 중간에, 가장 사랑하는 라헬과 요셉을 맨 뒤에 세웁니다. 맨 앞에 세워진 자녀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요셉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 장면이 나중에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는 이유 중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이름이 바뀐 야곱도, 여전히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3절“”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야곱이 앞장서 나갑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야곱의 마음속에는 위험이 닥치면 자신이라도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에 맨 뒤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야곱이 먼저 나섭니다. 하나님과의 씨름이 야곱을 조금씩 바꿔놓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에서를 향해 걸어갑니다. 어젯밤 허벅지 관절이 어긋난 야곱은 지금 절뚝이며 걷고 있습니다. 그 몸으로 형 앞에 나아가면서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혔습니다. 완전히 자기를 낮춘 것입니다. 절뚝이는 동생이 땅에 엎드려 일곱 번 절하는 모습. 20년 전 자기를 속이고 축복을 빼앗아갔던 그 야곱이 이렇게 나타났을 때, 에서의 마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성경은 4절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서로 울었더라”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복수하러 왔던 에서가 달려와 동생을 껴안고 울었습니다.
극적인 모습입니다. 하지만 정반대의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라반이 야곱을 해하려고 달려왔을 때 하나님이 밤에 나타나 31:24절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처럼, 에서의 마음도 하나님이 움직이셨습니다. 약속의 사람을 하나님이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지키신다는 것, 오늘 본문이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10절)
에서가 눈을 들어 아내들과 자녀들을 보며 묻습니다. “너와 함께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대답합니다. 5절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11절에서도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라고 합니다. 이제 야곱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은혜’라는 단어가 반복됩니다. 5절과 11절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 8절,10절 15절은 ‘에서의 은혜’를 구합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기 시작했을 때, 에서에게도 은혜를 구하고 에서에게도 은혜를 베풀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은혜를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이 10절에 있습니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20년 동안 야곱에게 에서의 얼굴은 두려움과 공포의 얼굴이었습니다. 어젯 저녁은 더 그랬습니다. 그런데 오늘 야곱은 그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야곱이 하나님을 대면했기 때문입니다. 32장과 33장은 ‘하나님의 얼굴’로 연결이 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대면한 야곱이, 이제 원수 같았던 형의 얼굴에서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된 것입니다.
관계의 문제는 관계 자체를 붙잡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볼 때, 원수처럼 보이던 사람의 얼굴도 달라 보입니다. 인간관계에 갈등이 생길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사람을 향해 집중합니다. 그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공격합니다. 그 사람이 사라지면 해결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은 항상 일어납니다. 문제는 상대가 아니라 내 마음의 시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먼저 엎드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다시 바라볼 때 사람이 달라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본문에는 야곱의 부족한 모습도 있습니다. 17절에서 야곱은 숙곳에 머물며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가축을 위하여 우리도 만듭니다. 28장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28:21-22절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고 약속했는데 벧엘까지 아직 거리가 많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자기 집을 먼저 지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신앙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아도, 우리의 변화는 한순간에 완전해지지 않습니다. 말씀을 듣고 충만한 은혜를 받아도 교회 문을 나서면 이전과 비슷해집니다. 그렇다고 변화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는 더디지만,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증거가 20절입니다.. 야곱이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습니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의미입니다. 이전에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이제는 ‘나의 하나님’입니다. 내가 만난, 내가 체험한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마무리합니다. 풀리지 않는 관계, 두려운 만남이 있다면 그 사람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볼 때, 두려웠던 사람의 얼굴이 달라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변화가 더디게 느껴져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야곱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