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3절)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험난한 시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딸 디나가 성폭행을 당했고, 그 일을 갚겠다고 나선 아들들이 이방 족장의 남자들을 모두 죽이는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주변 족속들이 야곱의 가정을 가만두지 않으려 합니다. 위기의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은 그 순간,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1절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 거기 거주하며 내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내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야곱은 원래 벧엘로 돌아오겠다고 하나님과 약속했습니다. 창세기 28장에서 고향을 떠나며 하나님을 만났던 그 자리에서, 야곱은 이렇게 서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이곳을 하나님의 집으로 삼겠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세겜에 머물렀습니다. 가나안 땅 세겜 근처 밭을 사고,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멈추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뒤로하고, 편한 자리에 머문 것입니다.
세겜은 세상과 하나님 사이의 경계 같은 곳이었습니다. 거기서 세상도 누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안정감도 얻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경계에서 머물던 야곱의 가정에 가장 충격적인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야곱아, 네가 있어야 할 자리는 거기가 아니다. 내가 너와 약속했던 벧엘로 올라가라.”
우리도 이런 경계에 머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싶고 세상도 놓고 싶지 않은 그 자리.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 경계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다면, 그것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는 부르심입니다.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 말씀의 자리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야곱이 가족들을 모아 놓고 명령합니다. 2절,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라” 야곱의 가정에 이방 신상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인데, 동시에 우상도 품고 있었습니다. 귀고리는 그 당시 부적처럼 사용하던 것이었습니다. 야곱 가족들은 하나님도 믿고, 눈에 보이는 다른 것들도 붙잡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가정이 겪은 문제의 뿌리였습니다.
야곱은 이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었습니다. 묻는다는 것은 단절입니다. 이전의 삶, 이방 신상과 함께하던 삶과 완전히 끊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어나 벧엘을 향해 걸음을 옮깁니다.
그러자 5절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살인을 저지른 야곱의 아들들을 주변 족속들이 추격할 것이 뻔한 상황이었는데,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셨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께로 돌아서자, 하나님이 야곱의 가정을 지켜주신 것입니다.
●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10절)
드디어 벧엘에 도착합니다. 약 30년 전, 혼자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며 돌을 베개 삼아 누웠던 그 자리.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던 그 자리. 야곱에게 이 땅은 특별한 곳입니다. 7절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엘벧엘은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벧엘에 오자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복을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10절 “내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이미 주셨던 이름인데 왜 다시 바꿔주실까요? 야곱이 실패하고 흔들리고 상처받은 뒤였기 때문입니다. 아마 야곱의 마음속에 이런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나와 우리 가정이 이렇게 엉망인데, 내가 정말 이스라엘이 맞는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도 너는 여전히 이스라엘이다”
실패한 뒤에도, 흔들린 뒤에도, 하나님의 약속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11절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이, 이삭에게 이어졌고, 이제 야곱에게 더욱 구체화됩니다. 처음으로 왕에 대한 약속이 포함됩니다. 이것은 나중에 다윗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약속입니다.
벧엘을 떠나는 길에 라헬이 산고 끝에 아들을 낳고 세상을 떠납니다.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였습니다. 라헬은 숨이 끊어지면서 아이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습니다.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엄마 입장에서 자기는 죽어가고, 이 아이의 앞날이 막막하게 느껴져서 지은 이름입니다. 그런데 18절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이 아이의 이름을 바꾼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야곱은 지금 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딸은 성폭행당했고, 아들들은 살인자가 됐고, 가장 사랑하는 아내는 눈앞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상황에서 아이의 이름을 ‘슬픔’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짓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야곱이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이 아이도 슬픔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이 아이를 붙들 것이다.
우리 삶에도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현실이 너무 절망스러워서 ‘슬픔의 아들’이라는 이름밖에 붙일 수 없을 것 같은 순간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이름을 바꿉니다. 슬픔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른손에 붙잡힌 것이라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 말씀의 자리. 그 자리를 벗어나 경계에 머물고 있다면,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다른 하나는 정체성입니다. 실패하고 흔들려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는 여전히 이스라엘이다!” 현실이 절망스러워도, 하나님의 약속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 약속을 붙잡고 오늘 하루를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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