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7:1–17절 / 요셉이 꿈을 꾸고(26.05.07)

2026.05.7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3절)

창세기 36장에서 에서의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37장이 시작되면서 무대가 바뀝니다. 에서의 후손은 왕을 세우고 강력한 나라를 이루었지만, 이제 성경은 다시 야곱의 가정으로 돌아옵니다. 초라해 보이고 문제 많은 그 가정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은 화려한 에서의 나라가 아니라, 바로 이 가정이었습니다.

2절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그런데 이어지는 내용이 특이합니다. 야곱이 누구를 낳고 누구를 낳았다는 계보가 아니라, 갑자기 요셉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야곱의 가정이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어 가는 이야기에서, 그 결정적인 역할을 요셉이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때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 번째,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낳은 첫아들이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형들과 함께 양을 치게 하면서도, 실제로는 형들을 감독하고 살피는 역할을 맡겼던 것 같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잘못하는 것을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을 단순한 고자질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12절을 보면 형들이 세겜으로 양을 치러 갔다고 나옵니다. 세겜은 야곱의 딸 디나가 성폭행당했던 땅이고, 야곱의 아들들이 살인을 저질렀던 바로 그곳입니다.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도 세겜에서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형들이 다시 세겜으로 갔습니다. 요셉의 눈에 형들은 세상을 동경하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않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요셉이 아버지에게 형들의 잘못을 고한 것에는,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에 대한 요셉의 순수함이 담겨 있었을 수 있습니다.

3절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니” 채색 옷은 단순히 예쁜 옷이 아닙니다. 소매가 길고 화려한, 특별히 귀한 신분을 나타내는 옷이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다른 형제들에게는 입혀주지 않는 옷을 입혔습니다. 야곱은 왜 이랬을까요?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낳은 노년의 아들이었고, 요셉이 상당히 총명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야곱 자신이 편애받는 가정에서 자라 상처를 겪었음에도, 야곱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겁니다.

4절 끝에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형들이 요셉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게 된 것입니다. 고자질하는 동생, 아버지에게 특별 대우를 받는 동생, 채색 옷을 입은 동생. 형들 마음속에 미움이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9절)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요셉이 꿈을 꿉니다. 5절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7절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형들의 반응이 당연합니다. 8절 “그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형이 동생에게 절한다는 것은 당시 상식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꿈을 꾸고 또 이야기합니다. 9절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해와 달은 아버지와 어머니, 열한 별은 열한 형제를 가리킵니다. 온 가족이 요셉에게 절한다는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꿈은 요셉이 꾸고 싶어서 꾼 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앞으로 이루실 일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같은 내용의 꿈을 두 번 꾸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강조입니다.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훗날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내려와 요셉 앞에 엎드리는 날이 옵니다.

11절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야곱도 꿈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벧엘에서 사닥다리를 보았고, 하나님이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의 꿈을 함부로 흘려듣지 않고 마음에 새겨 두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의 특징이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말도 안 되어 보입니다. 상식으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말도 안 되는 꿈을 이루십니다. 우리 삶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열망과 소망이 있습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붙들다 보면 교회를 향해, 가정을 향해, 일터를 향해 가슴에서 올라오는 그 꿈들이 있습니다. 현실이 너무 어두워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은 그것을 이루시는 분임을 오늘 요셉의 꿈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야곱은 세겜에서 양을 치는 형제들에게 요셉을 보냅니다. 헤브론에서 세겜까지는 약 80km입니다, 사흘에서 나흘을 걸어야 하는 거리입니다. 열일곱 살 소년이 혼자 그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것도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요. 그런데 요셉은 “내가 그리하겠나이다”라고 순종했습니다. 세겜에 도착했지만 형들은 이미 없었습니다. 들에서 방황하다 한 사람을 만났는데, 형들이 도단으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또 걸었습니다. 세겜에서 도단까지는 다시 약 20km. 요셉은 도단까지 찾아갔고, 17절 끝에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요셉은 자신이 지금 어디로 향하는지 몰랐습니다. 형들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여 길을 나선 그 발걸음이, 결국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는 하나님의 큰 계획으로 이어집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자신을 죽이려는 세상으로 걸어가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겹쳐 보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죄악된 땅에 오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모습이 요셉의 걸음 안에 담겨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세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편애의 위험입니다. 야곱은 편애의 상처를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가정에서든 공동체에서든, 특정한 사람만 편애하는 것은 균열을 만듭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꿈입니다. 말도 안 되어 보이는 꿈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현실이 어두울수록 하나님이 주시는 그 꿈을 붙잡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순종의 발걸음입니다. 요셉은 어디로 향하는지 몰랐지만 아버지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큰 계획은 때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길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오늘 그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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