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5:16-28절 /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26.05.22)

2026.05.22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내가 너희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주리니”(18절)

요셉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형제들과 화해하는 장면이 바로의 궁중에까지 알려졌습니다. 바로와 신하들이 기뻐합니다. 그리고 이 기쁨이 어떻게 야곱에게까지 전해지고, 야곱의 인생에 가장 큰 반전이 어떻게 일어나는지가 오늘 이야기입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명령했습니다. 18절 “너희 아버지와 너희 가족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19절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버지를 모셔 오라” 어제는 요셉이 애굽 땅으로 오라고 권면했다면 오늘은 최고 권력자인 바로가 동일한 내용을 이야기합니다. 당시 수레는 애굽의 최고 이동 수단으로 왕실 권위의 상징이었고 최첨단 기술의 결정체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바로의 의전 차량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바로는 그것을 내어줍니다. 가나안 땅의 살림들도 미련 두지 말고 버려두고 오라고 합니다. 애굽 땅의 좋은 것을 모두 주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저자가 이 장면을 기록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요셉의 성공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야곱에게 약속하신 민족의 형성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은 바로 왕을 움직이셨습니다. 바로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셨고, 그 과정에서 요셉을 총리로 세우시며, 이제는 세계 최강국의 왕이 야곱의 가족을 위해 최고의 혜택을 베풀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세상의 가장 강한 권력도 사용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눈에 띄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요셉의 기쁜 소식을 듣고 함께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 사람이 아닙니다. 히브리인 노예 출신입니다. 그런데도 바로의 신하들이 진심으로 기뻐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요셉이 총리의 자리에서 자기 유익을 추구하지 않고 나라를 살리는 일에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7년 흉년을 대비해 수많은 생명을 구한 요셉, 그의 헌신을 신하들이 보았습니다. 그러니 그의 기쁜 소식이 자신들의 기쁨이 된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기보다 시기와 질투가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믿지 않는 애굽 사람들조차 요셉의 기쁨을 함께 기뻐했습니다. 누군가의 기쁨을 진심으로 기뻐해 줄 수 있는 것,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아파해 줄 수 있는 것. 이것이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이어 요셉은 형들에게 수레와 길 양식을 주었고, 각기 옷 한 벌씩을 주고, 베냐민에게는 은 삼백과 옷 다섯 벌을 줍니다. 요셉의 이야기에서 옷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채색옷을 입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던 소년, 형들에게 그 옷이 벗겨지고 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그 채색옷에 짐승의 피를 묻혀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요셉이 형들에게 옷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형들은 이 옷을 받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요셉의 채색옷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 옷 하나 때문에 시기하고 미워했던 자신들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요셉이 자신들에게 옷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들을 용서했습니다. 과거의 그 일로 당신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베냐민에게는 은 300과 옷 다섯벌을 주지만 이제 형들은 비교하거나 시기하지 않습니다.

●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28절)

형들을 돌려보내며 요셉이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24절 “당신들은 길에서 다투지 마십시오” 이제 22년 전의 범죄가 아버지에게 알려질 것입니다. 형들은 가는 길에 그 이야기를 어떻게 꺼낼지 고민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 누가 더 나빴는지 따지다 보면 다툼이 벌어집니다. 요셉이 그것을 미리 차단했습니다. 지난 일에 대해 책임 공방하지 마십시오. 끝난 일은 끝난 일로 두고,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우리 삶에서도 이런 장면이 많습니다. 가정에서, 공동체에서 오래된 일을 다시 꺼내며 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는지를 따지다 보면 상처만 더 커집니다. 요셉의 말이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지난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앞으로 함께 걸어갈 방향을 찾는 것이 지혜입니다.

형들이 가나안에 도착해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26절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나이다” 야곱이 어리둥절했습니다. ‘어리둥절하다’의 의미가 “마음이 무감각하다, 기절하다”입니다. 22년 동안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살아 있다는 것, 그것도 애굽의 총리가 됐다는 것.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수레를 보았습니다. 수레가 요셉이 애굽에 있다는 것과 높은 지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증거가 되었습니다.

28절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야곱의 고백이 우리 마음을 울립니다. “족하도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아들이 살아 있다는 것 하나로 충분합니다. 22년 동안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 오셨습니다.

여기서 저자가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른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21,28). 오늘 본문에서 야곱과 이스라엘이 번갈아 등장합니다. 이것은 야곱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어 가는 이야기임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함께 기뻐하는 공동체입니다. 바로의 신하들이 요셉의 기쁨을 함께 기뻐했듯, 우리도 서로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고 서로의 슬픔을 함께 아파하는 공동체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은 끝났다고 생각해도 하나님은 끝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22년 동안 끝났다고 생각했던 그 일이 오늘 회복되었습니다. 우리가 포기한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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