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5:1-13절 / 순전함과 진실함으로(26.06.08)

2026.06.8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2절)

4장까지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세상의 지혜가 교회 안에 들어와 그 기준으로 지도자들을 평가하였습니다. 바울은 해결책으로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를 해답으로 제시합니다. 오늘 5장부터 새로운 주제가 등장합니다. 교회 안의 음행 문제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핵심은 그 음행 자체보다는 그 문제를 대하는 교인들의 태도입니다.

1절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하지 않는 일, 아버지의 아내와 관계를 맺은 사람이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아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새어머니와 음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교인들이 이 심각한 죄를 보고도 아무 문제를 삼지 않았습니다.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 사람이 교회 안에서 영향력있는 사람이었는지 모릅니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위상을 가진 인물로 보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문제를 지적하면서 2절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라고 하며 ‘교만’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스스로 영적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6절도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자랑’에 대해서 말합니다.

4:6-7절에서도 반복되던 고린도 교회의 문제, 교만과 자랑이 여기서도 드러납니다. 나는 이 정도면 괜찮아, 나는 이미 영적으로 성숙해, 이런 교만이 명백한 죄도 그냥 넘기게 만든 것입니다. “저런 죄 하나가 무슨 심각한 영향을 미칠까?” 등등.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교만한 줄 모릅니다. 자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자랑하는 줄 모릅니다. 그것이 교만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도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나는 교만하지 않은가, 나도 모르게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바울은 단호합니다. 이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공동체 밖으로 내보내라고 했습니다. 5절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는 교회 공동체 밖으로 내보내는 출교를 의미합니다. 단절을 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교회의 거룩함을 지켜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이런 징계의 목적이 “그가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교회의 수용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돌아보지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출교라는 징계를 내린다면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중에라도 회개하고 돌이켜 구원의 길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벌을 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돌이키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교단에도 권징조례가 있습니다.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 성도에게 일정 기간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수찬 정지와 같은 징계를 내리는 규정입니다. 이는 수치를 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내가 성찬에 참여할 자격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징계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만큼 교회는 거룩함과 질서를 잃고 혼란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8절)

왜 이 문제를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되는가? 6절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6-8절에는 ‘누룩’이라는 단어가 반복됩니다. 누룩은 특성이 있습니다. 조금만 넣어도 전체를 부풀립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죄를 용납하면 그것이 순식간에 퍼집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해도 괜찮구나, 나도 괜찮겠지. 이렇게 기준이 무너지고 더 큰 죄가 들어옵니다. 공동체 전체가 오염됩니다.

그래서 7절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에서 해방된 거룩한 존재입니다. 이미 누룩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묵은 누룩에 오염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이것을 유월절을 통해 설명합니다. 유월절은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누룩 없는 떡을 먹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죄에서 해방된 우리가 다시 죄의 누룩에 물드는 것은 유월절의 의미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8절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9-13절에서 바울은 가르침에 대한 오해를 수정합니다. 바울이 이전에 쓴 편지에서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고 했는데, 고린도 교인들이 이 말을 잘못 이해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죄를 짓는다고 그들과 관계를 끊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면 전도를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말한 것은 11절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 형제라고 불리는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다면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모순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죄에는 분노하고 비난하면서, 정작 교회 안에 있는 명백한 죄는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방향이 완전히 거꾸로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뒤집습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교제하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 안의 명백한 죄는 분명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세상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13절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세상 사람들의 심판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교회 안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두 가지를 우리에게 남깁니다. 하나는 교만과 자랑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문제의 뿌리는 교만이었습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비추어 보고, 나도 모르게 교만하고 자랑하는 마음이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누룩보다 내 안의 누룩을 먼저 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이 잘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내 안에 있는 누룩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제거하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일입니다.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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