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1절)
15장에서 바울은 새로운 주제를 이야기합니다. 부활입니다. 13장이 ‘사랑장’이라면 15장은 ‘부활장’입니다. 바울이 부활을 다루는 이유는, 고린도 성도들이 부활을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육체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영적인 부활만 생각하고 육체의 부활은 받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본격적인 가르침에 앞서, 복음의 기초가 무엇인지부터 다시 설명합니다.
1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바울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교회보다 더 많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들은 복음을 그대로 간직하지 못하고, 시간이 흐르며 자기 생각과 세상의 기준대로 왜곡한 데 있었습니다. 복음의 변질입니다. 이처럼 교회 문제의 뿌리는 복음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2절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이 말은 곧 고린도 성도들이 지금 그 말을 굳게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두려운 것은, 부활을 잘못 이해하면 그것이 구원의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복음을 오해하는 것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길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도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의 기초, 특히 복음의 중심 위에 바르게 서 있는가 하는 겁니다. 고린도 교회가 변질된 이유는 세상의 가치관이 하루아침이 아니라 하나둘씩 서서히 스며들었기 때문입니다.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세상과 다르지 않은 공동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의 교회에도 그대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우리가 복음 위에 제대로 서 있는지 늘 말씀을 통해 돌아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받은 것을 고린도 성도들에게 전했습니다. 그 내용이 3-4절입니다.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여기서 바울이 두 번 강조하는 말은 ‘성경대로’입니다.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이미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계획이 온전히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두 절에 복음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죄 때문에 죽음이 왔는데, 그 죄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이 확증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와 부활은 함께 가야 합니다. 십자가만 있고 부활이 없으면 반쪽이고, 부활만 있고 십자가가 없어도 반쪽입니다. 십자가로 죄가 해결되고, 그 결과 우리가 죽음에서 생명을 얻었음이 부활로 확정되는 것, 이것이 온전한 복음입니다.
그런데 3-4절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육체로’ 죽으셨고 ‘육체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당연해 보이는 이 사실을 바울이 굳이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의 육체적 죽음과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육체로 와서 비참하게 죽을 수 있느냐며, 예수님이 영적으로 오시고 영적으로 죽으셨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못박습니다. 예수님은 온전한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육체로 죽으셨고, 온전한 육체로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고린도 교회의 부활 문제와 연결됩니다. 그들은 육체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육체로 부활하셨고, 우리도 육체로 부활한다고 말합니다. 다만 지금의 병들고 연약한 몸 그대로가 아니라, 완전하고 새로운 몸, 곧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됩니다.
● “내게도 보이셨느니라”(8절)
5절부터 바울은 예수님이 육체로 부활하셔서 여러 사람에게 보이셨음을 강조합니다. 게바(베드로)에게 보이시고 또 열두 제자에게 보이셨습니다. 6절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여기서 중요한 말은 ‘일시에’입니다. 오백 명이 각자 환상을 본 것이 아니라, 한 자리에서 동시에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증인들 대다수가 편지를 쓰는 지금도 살아 있다고 덧붙입니다. 곧 누구든 직접 물어 확인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7절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형제들은 처음에 예수님을 잘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가족을 전도하기가 가장 어렵듯, 동생 야고보도 형님이 행하신 많은 기적을 보고도 인정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완전히 변화되어, 후에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8절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바울 자신에게도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만났고, 바울은 승천 이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기에 형태는 조금 다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자신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그래서 사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5-8절까지 ‘보이셨다’는 말이 네 번이나 반복됩니다. 부활의 증인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바울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바울은 본래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사도라 불릴 자격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10절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핍박자였던 자신을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신 것이 은혜이고, 그 은혜가 그를 헌신적인 사도로 만들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니 모든 것이 이해되었습니다. 부끄럽게만 여겼던 십자가가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이었음을, 그리고 자신에게도 주님과 같은 부활의 소망이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 미래를 바라보았기에 바울은 그토록 헌신할 수 있었고, 그것을 자기 공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11절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수많은 증인이 함께 증거한 것이며, 고린도 성도들도 그 복음을 받아 믿었습니다. 그러니 그 복음을 바르게 붙들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신앙의 기초인 복음 위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기초가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바른 복음인지 늘 돌아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영향으로 변질된 복음이 아니라,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살아나신 그 복음 위에 날마다 서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하나는 부활의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를 받은 바울이 누구보다 헌신했듯, 그 은혜를 경험한 우리도 감사함으로 합당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부활의 분명한 소망을 품고 주님 다시 오실 때를 바라보며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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