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6:13-24절 / 깨어 믿음에 굳게 서라(26.06.30)

2026.06.30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14절)

오늘 본문은 고린도전서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인사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끝맺음이 아닌, 짧고 강한 권면, 동역자를 향한 감사, 그리고 무거운 경고와 따뜻한 사랑이 한데 어우러져, 바울이 이 편지 전체에서 하고 싶었던 말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13-14절에서 바울은 짧고 굵은 권면을 연달아 던집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마치 한 편의 짧은 설교 같습니다.

첫째,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떠내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깨어 있음이 없으면 자칫 흘러가 버리기 쉽습니다. 둘째, ‘믿음에 굳게 서라’입니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무엇 위에 서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상이나, 우리가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오직 믿음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셋째, ‘남자답게 강건하라’입니다. 이 표현은 ‘용감하게 행하라, 담대하라’는 뜻입니다. 모세가 가나안 정복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신31장)고 격려할 때 쓰인 단어입니다. 바울은 영적 싸움이 치열한 고린도 교회를 향해, 정복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그 담대함을 가지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용감하게 나아가라는 부르심입니다.

그리고 14절에는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권면이 이어집니다.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13장에서 바울은 아무리 대단한 은사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도 결국 은사는 자랑하면서 사랑이 없었던 데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편지 전체를 마무리하는 한마디는 결국 사랑입니다. 깨어 있음도, 굳게 섬도, 담대함도, 그 모든 것이 사랑 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15절부터 바울은 동역자들에 대한 감사를 표합니다.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스데바나의 가정은 고린도가 속한 아가야 지역의 첫 회심자였습니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황량한 땅의 첫 믿음의 사람이니, 그 자체로 얼마나 귀합니까. 그런데 더 귀한 것은 이 첫 회심자가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첫 번째로 믿은 그가 자기 사명을 ‘성도 섬기는 일’로 삼은 것입니다. 회심한 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이 땅에 복음의 기초를 세우고 성도를 섬기는 것이라 결심하고, 그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한 것입니다.

16절에서 바울은 권합니다. “이 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고린도 교회에는 교만하고 자랑하며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가 무너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교회를 섬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뭔가를 드러내고 눈에 띄는 일을 하는 사람을 통해 교회가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 사명을 알고 묵묵히 섬기는 사람들을 통해 교회는 세워져 갑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하라고 권합니다. 그 말에는 이런 성도들을 하나님이 반드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리라는 확신이 담겨 있습니다.

17-18절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이 세 사람이 고린도에서 에베소에 있는 바울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이 채운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직접 개척했기에 그들을 향한 사랑이 컸지만, 동시에 그 교회로 인한 상처도 컸습니다. 지도자를 두고 파가 갈리고, 일부는 바울을 두고 부정적인 평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마음 아픈 상황에서, 이 세 사람이 먼 길을 와 바울과 함께하고 격려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의 부족함을 채웠습니다.

또한 이들은 18절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바울의 마음도, 고린도 성도들의 마음도 시원하게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문제를 일으키는 미숙한 신앙도 많았지만, 누군가의 부족을 채우고 자기가 섬길 자리를 아는 성숙한 성도들이 있었기에 교회가 이어졌습니다. 우리도 서로에게 걱정과 근심을 안기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만 해도 기쁘고 감사하여 함께하고 싶은, 서로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동역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요.

●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22절)

19절부터는 문안 인사입니다. 특히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가 눈에 띕니다. 로마에서 유대인 추방령으로 쫓겨나 고린도로 갔다가 거기서 바울을 만나 함께 교회를 섬긴 이들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부부를 그리스도 안의 동역자라 부르며,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롬16:3-4). “그 집에 있는 교회”라는 표현에서, 당시 성도들이 가정에 모여 예배드렸음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22절에서 분위기가 갑자기 바뀝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문안과 은혜로 따뜻하게 끝날 것 같던 편지에, 갑작스러운 경고가 등장합니다. 지금까지 보았듯 고린도 성도들 가운데 일부는 바울의 말을 흘려듣고, 교만과 자랑으로 교회를 어지럽혔습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 편지의 내용을 가볍게 흘려보내지 말고 무겁게 받아 마음에 새기라고 강하게 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곧 그분의 사랑을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어 바울은 외칩니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우리가 잘 아는 ‘마라나타’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깨어 담대히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이 곧 오시기 때문입니다. 15장에서 본 부활의 영광을 입을 성도라면, 그 오심을 기다리는 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23-24절이 마지막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하고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할지어다”

편지를 마칠 때 흔히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함께하기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24절이 특이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라 ‘나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이런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향한 이 편지는 책망이 강했습니다. 바울은 염려했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이 편지를 읽으며 “바울이 우리를 공격하는구나” 하고 마음 문을 닫아버리면 어쩌나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점을 염려하여, 마지막에 분명히 합니다. 이 모든 권면은 개인적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눈물의 기도 속에서 여러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쓴 것이라고. 그러니 ‘나의 사랑’이 너희와 함께한다는 이 마지막 한마디는, 강한 책망 뒤에 그 모든 말의 진짜 뿌리가 사랑이었음을 전하는 고백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담대히,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휩쓸리지 않고, 사람에게도 문제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분별하여 믿음 위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서로의 부족을 채워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것입니다. 공동체에도 사람에게도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을 지적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채워주는 사람, 그가 곧 누군가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그렇게 서로를 세우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자라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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