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 나를 고치소서”(2절)
오늘은 시편 6편을 묵상합니다. 1편은 복 있는 사람을, 2편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한 자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3편부터 이어지는 다윗의 시들은 대부분 대적들에게 고통당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는 내용입니다. 오늘 6편도 그렇습니다. 대적도 있고, 심지어 하나님마저 자신에게 진노하시는 듯한 무거운 마음으로 다윗이 기도합니다.
이런 시편의 흐름을 통해 알게되는 것이 있습니다. 1편이 말한 ‘복 있는 사람’의 삶이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악인의 길은 강하고 의인을 공격하는 자도 많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복 있는 사람의 길을 가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그 길을 걷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기도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임을, 다윗의 시들이 보여줍니다.
1절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분노를 쏟으시고, 그 진노로 자기를 치시는 것 같은 느낌에 짓눌려 있습니다. 그러면서 본문 뒤로 가면 대적도 등장합니다. 7절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10절 “내 모든 원수들이”라는 표현이 그렇습니다. 대적의 공격과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동시에 시인의 마음을 누르고 있습니다.
우리도 어떤 일을 만나면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잘못해서 이러시는 건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힘든데, 상황은 힘겹고 사람들의 공격까지 겹치면 견디기 어렵습니다. 현재 다윗이 그런 상황입니다.
2-3절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마음의 고통이 육체로 나타납니다. 뼈는 우리 몸을 지탱하는 근간인데, 그 뼈가 떨린다는 것은 온몸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 곧 마음까지 심히 떨린다고 합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 무너져,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 결과 ‘나를 고치소서’라는 표현에서 보듯 시인은 지금 병들어 누워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 5절에서는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께 구합니다.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으면 회복할 수 없다는 절박한 간구입니다.
3절 끝은 문장이 끊기듯 이어집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응답이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떨리고, 하나님마저 진노하시는 듯한 상황에서 원망이 생길 법도 한데, 다윗은 기도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나를 회복시키고 고치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확신으로 그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8절)
4절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돌아오라’는 간구는 하나님이 자신을 멀리 떠나신 듯 느껴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떠나셨을 리는 없지만, 기도에 응답이 없는 듯하니 “돌아오셔서 내 영혼을 건져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주의 사랑으로’입니다. 원어로 ‘헤세드’인데, 하나님이 언약을 맺으신 백성을 향해 변함없이 지키시는 사랑과 자비를 뜻합니다. 다윗이 구원을 구하는 근거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의로워서도, 무언가를 잘해서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변함없는 인자하심에 기대어 기도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우리는 무언가 잘못했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갈 면목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잘못해서 기도할 수 없다”는 마음의 이면에는 “내가 잘하면 하나님께 무언가 주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 숨어 있습니다. 다윗은 잘하든 못하든, 오직 하나님의 인자하심에만 기댑니다. 내 연약함을 그대로 끌어안고 “하나님, 저는 주의 인자하심과 긍휼밖에 기댈 것이 없습니다!”라고 나아갑니다. 우리가 부끄러운 자리에 있을 때에도 도리어 그 인자하심을 붙들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요.
5절에서 다윗은 자신의 처지를 아뢰며 기도합니다.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여기서 ‘스올’은 지옥이 아니라 죽은 자가 머무는 곳, 곧 무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구절의 뜻은 죽은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살려 달라고 구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저 편해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살아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며 그 영광을 위해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시면 그 생명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다는 간구입니다.
6절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눈물로 침상을 띄운다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지만, 그만큼 밤마다 눈물로 기도하며 지새웠다는 것입니다. 기도해도 여전히 근심은 남아 있고, 하나님은 멀리 계신 듯합니다.
그런데 8절에서 시의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뀝니다. 7절까지 그토록 힘들고 죽을 것 같고 밤마다 눈물짓던 시인이, 이제 이렇게 선포합니다.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기도의 시간을 통해 시인의 마음에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셨으니 반드시 일하시리라는 확신입니다. 기도해 본 사람은 압니다. 기도한다고 문제가 즉시 해결되는 일은 드뭅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게 되고,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반드시 응답하시리라는 확신이 마음에 자리 잡습니다. 그때 근심과 슬픔이 기쁨과 감사로 바뀝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다윗은 밤새 눈물로 기도하다가 어느 순간 그 확신을 경험한 것입니다.
10절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여기에 놀라운 반전이 있습니다. 2-3절에서 떨던 것은 다윗의 뼈와 영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떠는 것은 다윗이 아니라 원수들입니다. 기도를 통해 다윗의 떨림은 멈추고, 도리어 담대함이 자리 잡았습니다.
또 4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돌아오소서’라고 구했는데, 그 하나님이 돌아오시면 대적들은 도리어 ‘물러갑니다’ 문제가 우리를 떠나는 것은 우리가 문제와 싸워 밀어내서가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가까이 오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 기도를 들으실 때,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던 대적과 문제가 물러갑니다. 여전히 문제가 있지만 하나님의 평강이 찾아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떨림 속에서 주저앉지 않고 기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몸이 떨리고 마음이 떨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나를 회복시키실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 그분께 맡기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오직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근거로 나아갑니다. 부끄러운 자리에 있을 때에도 그 인자하심을 붙들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돌아오셔서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가 어찌할 수 없던 문제들을 물러가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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