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1절)
다윗은 계속해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에 주저앉거나 절망하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진짜 신앙은 어려움이 찾아올 때 드러납니다. 다윗이 만난 상황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힘든 자리에서 다른 도움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께 도움을 구합니다. 참으로 귀한 신앙입니다.
이 시에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다윗의 식가욘,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따라 여호와께 드린 노래” 여기 ‘식가욘’은 구약에서 이곳과 하박국 3장에만 나오는 드문 단어로, 정확한 뜻은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격정적인 감정으로 울부짖듯 토해내는 노래로 봅니다. 실제로 오늘 다윗의 기도는 상당히 격정적입니다.
1-2절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다윗은 자신을 쫓는 대적들을 ‘사자’로 표현합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만나면 마음이 위축되고, 그 앞에서 대적은 훨씬 더 커 보입니다. 다윗의 상황이 그러했습니다. 대적들은 언제든 찢어 삼킬 것 같고, 자신은 그 앞에서 떠는 처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감당할 수 없는 문제나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할까요. 솔직히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환경을 먼저 의지하려 합니다. 평상시에는 기쁨으로 신앙 생활하다가도, 큰 문제를 만나면 하나님은 생각나지 않고 “누가 나를 도와줄까”에 매달리곤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자 같은 대적이 금방이라도 삼킬 것 같은 그 자리에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라고 고백합니다. 피하고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신앙이 귀합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다윗이 어려움을 만나 갑자기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평상시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붙들며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기에, 이 위기에서도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평소에 새벽을 깨우고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깨어 있어야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또한 공동체가 서로를 말씀으로 세워주는 일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누군가 위기를 만났을 때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피할 수 있도록, 서로를 말씀으로 세워가야 합니다.
다윗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죄를 아룁니다. 3-4절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만일 자신이 정말 악을 행했다면, 언약을 맺은 자를 배신했다면, 까닭 없이 남의 것을 빼앗았다면, 이런 고난을 기꺼이 당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결백 주장이 아닙니다. 다윗이 그동안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왔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만나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돌아보지 않고, 당장 이 문제만 해결해 달라고 매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먼저 자기 삶을 하나님 앞에 돌아봅니다. 조금이라도 악이 있었다면 이 과정을 기꺼이 당하겠다고, 그것이 하나님이 자신을 새롭게 하시는 과정일 수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11절)
무죄를 아뢴 다윗은 이제 하나님께서 일어나 대적을 상대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6-7절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일어나소서, 깨소서’는 하나님이 전쟁터에 나서시기를 구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의 통치자로 보좌에 앉으셔서 모든 것을 심판하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반복되는 핵심어가 있습니다. ‘의’입니다. 원어로 ‘체데크’인데, 오늘 본문에 거듭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십니다. 그래서 11절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라” 이것이 억울한 자에게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릅니다. 지금 다윗이 바로 그런 억울함을 당하고 있습니다. 대적들이 누명을 씌우고 자기들이 옳다 하는데, 변명할 길도, 들어줄 이도 없습니다.
그때 다윗이 의지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을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그 마음과 생각과 양심까지 감찰하시고 반드시 갚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0절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대적들은 다윗이 불리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마음을 감찰하시고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11절은 하나님이 “매일 분노하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무엇에 분노하실까요. 악인들이 스스로와 남을 속이며 악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지 않고 날마다 분노하십니다. 또한 회개하지 않는 자를 향해 하나님은 이미 칼을 갈고 활을 당기고 계시며, 그 화살은 불화살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악을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14절에서 다윗은 기도 가운데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왜 악인은 저토록 악을 행할까? 늘 마음에 악과 죄를 품고 그것을 잉태하여 낳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끝은 15-16절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남을 해하려 판 웅덩이에 결국 자기가 빠지고, 자기가 꾸민 악이 그대로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갚으시기 때문입니다.
17절이 결론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어떤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반드시 해결하시리라는 믿음으로 감사하고 찬양하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기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따라 감사합니다. 그의 확신은 자기 완전함이 아니라 의로우신 하나님께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평소에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기도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하나님 앞에 아뢰었습니다. 기도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며 바른 관계를 맺어가는 것, 그리고 공동체가 서로를 말씀으로 세워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른 하나는 의로우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는 의로운 재판장이십니다.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나님은 다 아시고 악인이 스스로 판 웅덩이에 빠지게 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아직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도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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