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4절)
다윗은 대적들의 조롱과 공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했습니다. 오늘 본문도 대적에게 둘러싸인 상황이지만, 앞부분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어려움 한복판에서 어떻게 이런 찬양이 나올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오늘 본문이 보여줍니다. 이 시는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를 따라 각 단락의 첫 글자를 맞춘 노래입니다. 우리로 치면 ‘가나다’ 순으로 지은 시와 같습니다. 그만큼 정성 들여 지었고, 외워 부르기 좋게 만든 것입니다.
1-2절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다윗은 전심으로, 곧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윗이 무엇을 감사하는가입니다. 다윗은 ‘주의 기이한 일들’, 곧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전하며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기억하며 감사합니다.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감사입니다.
3-8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노래합니다. 반복되는 단어가 ‘심판’입니다. 4절 “주께서 나의 의와 나의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7절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오늘 본문에 ‘심판하다, 판결하다’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원어로 ‘샤파트’인데, 재판장이 옳고 그름을 가려 판결을 내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재판장으로 보좌에 앉으셔서,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억울한 자에게 얼마나 큰 위로인지요. 다윗은 지금 대적들에게 모함과 공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변명할 길도, 억울함을 풀 길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시고, 공의로 판결하시는 분입니다. 세상 법정은 억울한 판결을 내리기도 하고, 힘 있는 자에게 유리하게 기울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다릅니다. 사람의 마음과 양심까지 감찰하시고,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공의로 판결하십니다.
5-6절은 그 심판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악인을 책망하시고 그 이름을 영원히 지우시니, 원수는 끝없이 멸망하고 그들이 세운 성읍조차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아무리 기세등등하던 악인도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는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18절)
이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억울한 자에게 어떤 분이 되어 주실까요. 9절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요새’는 원어로 ‘미스갑’인데, 적이 도무지 닿을 수 없는 높고 견고한 산성을 뜻합니다. 세상의 공격이 아무리 거세도, 그 높은 요새 안에 있으면 안전합니다.
특히 10절이 중요합니다.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하나님을 요새로 삼아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주의 이름을 아는 자’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저 명칭을 안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인격적으로 깊이 아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공의로우시고, 신실하시며, 자기를 찾는 자를 버리지 않으시는 분임을 아는 사람이라야, 환난 때에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피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어떻게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찬양할 수 있었는지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참된 지혜가 두 가지,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자기 자신을 아는 지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이 둘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수록 나의 연약함과 죄를 알게 되고, 나의 연약함을 알수록 그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알았기에 자신의 처지를 알았고, 그렇기에 요새이신 하나님께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알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11-12절에서 다윗은 이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자고 회중을 초청합니다.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고, 그분이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통받는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기억하시고 잊지 않으십니다. 18절도 그렇습니다.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세상은 힘없고 가난한 자를 쉽게 잊고 무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낮고 약한 자, 억울하고 소외된 자를 기억하시고 반드시 그 소망을 이루십니다. 이것이 세상의 질서와 다른 하나님 나라의 질서입니다.
13-14절에서 다윗은 자신의 처지를 아룁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사망의 문에서 나를 일으키시는 주여” ‘사망의 문’이라는 표현을 통해 지금 다윗은 죽음의 문턱에 이를 만큼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14절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수 있게 하시며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라고 합니다. ‘사망의 문’이 ‘시온의 문’으로 이어집니다. 살려 주시면 그 생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악인들은 어떻게 될까요? 악인은 남을 해하려고 웅덩이를 파고 그물을 놓지만, 결국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지고 자기가 놓은 그물에 걸립니다. 악은 반드시 그 악을 행한 자에게 돌아갑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벼락을 내리시기보다, 악인이 스스로 행한 악이 그 자신에게 돌아가게 하심으로 공의를 이루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직접 갚으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반드시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19-20절에서 다윗은 마지막으로 기도합니다. 여기 ‘인생’이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자기가 대단한 줄 아는 인생들이 실은 연약한 사람일 뿐임을 깨닫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힘을 부려도 결국 하나님 앞에서는 유한한 인생일 뿐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아는 만큼 감사하고 찬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형편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았기에 어려움 속에서도 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갈 때,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감사와 찬양을 회복하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요새로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억울한 자를 변호하시고, 악인이 스스로 판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며, 가난한 자를 잊지 않으시는 공의의 재판장이십니다. 우리가 억울하고 힘든 일을 당할 때, 직접 갚으려 애쓰기보다 그 하나님을 요새 삼아 피하며, 반드시 판단하실 그분을 신뢰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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