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1-6절 / 어느 때까지니이까(26.07.13)

2026.07.13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1절)

오늘 본문 13편도 다윗의 시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시들처럼 다윗은 대적과 원수 때문에 고난 당하고, 심지어 죽음의 위기를 만나고 있습니다. 계속 묵상하다보니 비슷한 내용들이 이어집니다. 이런 시편들은 우리 인생의 다양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지를 다윗의 모습을 통해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도 짧은 여섯 절 안에, 절망에서 찬양으로 나가는 신앙의 여정이 담겨 있습니다. 이 시는 탄식(1-2절), 간구(3-4절), 신뢰와 찬양(5-6절)이라는 선명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2절에는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는 질문이 네 번이나 반복됩니다. 1절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지금 시인에게 가장 힘든 것은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고난과 문제, 죽을 것 같은 위기가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님마저 자신을 외면하신 듯한 이 상황이 그를 가장 힘들게 합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이러시면 안 되는데, 도대체 어느 때까지입니까”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1절 시인의 탄식 중에 마음에 감동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시인은 “하나님, 왜 능력을 나타내지 않으십니까, 당장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지 않고, “어느 때까지 주의 얼굴을 숨기시겠나이까”라고 기도합니다. 능력은 한 번 내려주시면 문제가 해결되지만, 시인이 더 사모하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 곧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시며 그 고난의 길을 같이 걸어 주시는 것입니다. 동행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 그 자체로 사랑하기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무언가 때문에 하나님을 붙잡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무언가를 주시면 좋아하고 주시지 않으면 실망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가까이 가고, 문제가 없으면 멀어집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보다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자체를 구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탄식은 원망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멀어지신 것 같은데, 시인은 “그럼 나도 멀어지겠다”며 등을 돌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멀어지신 듯한 하나님께 기도로 더 가까이 나아갑니다. 이것이 3절입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이 간구에는 세 가지 요청이 담겨 있습니다. 나를 생각하시고(보시고), 응답하시고, 눈을 밝혀 달라는 것입니다. ‘눈을 밝혀 달라’는 것은, 죽음의 문턱에 이른 자신에게 활력을 주시고 소생시켜 달라는 간구입니다. 꺼져가는 생명의 빛을 다시 밝혀 달라는 것입니다.

절망의 자리에서 기도로 더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죽음 같은 고난을 겪어 본 사람은 그 자리에서 기도가 얼마나 어려운지 압니다. 그럼에도 시인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나를 일으킬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며,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신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분의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4절에는 시인이 두려워하는 것이 나옵니다.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이것은 자신이 패배해 조롱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지만, 시인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무시당하는 것입니다. 나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입니다. 자기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서도, 자기 영광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나에게만 맞춰져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5절)

그렇게 기도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자, 시인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5절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여기서 ‘오직’이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세상에는 나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은 것들이 많지만, 살아 보니 진짜 나를 도우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한다고 고백합니다.

여기 나오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이 시 전체의 핵심입니다. 원어로 ‘헤세드’인데, 하나님의 변함없는 언약적 사랑을 뜻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 백성을 놓지 않으시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비록 현실은 힘들고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아도, 그 헤세드는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붙들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 언약적 사랑을 붙들고 다시 일어섭니다.

이 사랑을 의지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것을 의지하게 됩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환경을 의지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내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고, 환경은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서운함과 실망이 찾아옵니다. 사람과 환경을 의지하면 잠시 평안할 수는 있어도 참된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붙들 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시인의 변화가 늘 그렇듯 시인의 상황은 여전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사망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고 하나님의 침묵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헤세드를 붙들자,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아직 응답받지 못했지만, 반드시 회복시키시고 구원하실 것을 확신하기에 이미 그 구원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어느 때까지입니까”라는 탄식이 “구원을 기뻐합니다”라는 고백으로 바뀐 것입니다.

6절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하나님이 나를 너그럽고 풍성한 은혜로 대하셨음을 확신하며 찬송으로 시를 맺습니다. 숨겨진 듯했던 하나님의 얼굴빛이 여전히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기도 가운데 발견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멀어지신 듯한 하나님께 기도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느 때까지입니까” 하는 탄식의 자리에서, 시인은 등을 돌리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듯할 때도, 나를 일으키실 분은 하나님 한 분뿐임을 알고 그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람과 환경을 의지하면 실망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헤세드를 붙들면 상황이 바뀌기 전에도 이미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교우들 가운데 질병과 문제로 시인처럼 부르짖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적인 사랑으로 붙들어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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