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1:1-16절 / 여호와를 경외하는 즐거움(26.07.30)

2026.07.30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1절)

지금까지 이사야는 앗수르의 심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남유다도 끝내 돌아오지 않아 결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다 멸망했다면, 하나님의 역사도 다 끝나 버린 것이 아닌가? 바로 그 자리에서 오늘 11장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회복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1절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이니, ‘이새의 줄기’는 다윗 왕조를 가리킵니다. 다윗 시대에 이스라엘은 크고 부강한 나라, 나무로 치면 거대한 나무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가 끝에 와서 완전히 잘려, 이제 밑동만 남은 그루터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다 끝났다고 여길 그때, 하나님은 그 그루터기에서 연한 싹 하나가 돋는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싹을 통해 다윗 왕조보다 더 완전하고 위대한 나라, 진정한 통치를 이루시겠다고 하십니다. 모두가 끝났다고 할 때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방법으로 시작하십니다. 이 싹은 앞서 이사야가 예고해 온 그분, 곧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삶을 살다 보면 “이제 끝이구나, 절망이다”라는 마음이 들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는 끝이 없고 절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새롭게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 안에 머물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실 것을 기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싹, 곧 새로운 통치자는 무엇으로 나라를 이끄실까요. 2절 “그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세상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통치합니다. 여기 여러 영이 나열되는데, 지혜와 총명과 모략, 그리고 거기에 ‘지식’이 더해집니다. 이것은 인생을 살아가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본문은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이 무너진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니 바르게 섬기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이 우리 힘으로 되는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 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령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르게 알면 어떻게 됩니까. 2절 끝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신지, 그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우리를 향한 계획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안다면, 경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 경외가 3절에서 이렇게 표현됩니다.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하나님을 섬기는데 어쩔 수 없어서, 매 맞을까 봐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니까 그 하나님이 너무 귀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워서, 즐거움으로 기쁨으로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오래 신앙생활한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우리는 예배하러 나올 때 어떤 마음으로 나옵니까.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나옵니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나옵니까. 만약 예배가, 신앙이 부담으로 느껴진다면 문제가 어디 있는 것일까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즐거움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지식으로만 아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 안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할 때, 신앙은 자칫 무거운 짐이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 섬김이 기쁨과 감격이 되는데, 누군가에게는 갈수록 무거운 짐이 됩니다. 그런 자리에 있다면, 무엇보다 먼저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다시 알아가는 것, 그 회복을 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특징이 나타납니다. 3절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함부로 판단하고 평가하고 말하게 됩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심각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어떻게 판단합니까. 4절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특히 4절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이 사람의 입에 막대기가 있다는 것은, 그 입술에서 하나님의 바른 기준이 나온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잘못된 기준을 바르게 짚어 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가족들이 서로 하나님의 기준으로 이야기하고, 교회 공동체가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말하고 그렇게 살아간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겠습니까. 오늘 내 입술에서 나오는 말은 세상의 기준입니까, 하나님의 기준입니까.

●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9절)

6절부터는 이 메시아가 다스리시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고, 송아지와 어린 사자가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이끌립니다.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해도 해를 입지 않습니다. 이리와 어린 양은 본래 함께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함께 삽니다. 함께할 수 없는 존재들이 함께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셨을 때의 본래 모습입니다.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오자 세상이 약육강식의 자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메시아를 통해 하나님은 이 깨어진 세상을 본래의 화평으로 회복시키십니다.

그렇다면 이런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집니까. 세상은 정치를 잘하면, 경제가 발전하면 억울한 사람 없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치가 그런 세상을 만든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공약과 계획을 세워도, 모든 문제의 뿌리인 인간의 죄성을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9절이 답합니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아름다운 세상은 정치와 경제가 아니라,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해질 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인정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적당히 알아서는 안 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 안에 충만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적당히 안는데 있습니다. 적당히 알고 적당히 삽니다. 그런데 적당히 알고 적당히 살면,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라 세상의 기준을 택하게 됩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것도 ‘적당함’때문이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아는 지식은 지금 어느 깊이에 있습니까.

10절부터 이 회복이 한 나라를 넘어섭니다. 이새의 뿌리에서 난 싹이 만민의 기치로 서고,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옵니다. ‘기치’는 깃발입니다. 하나님이 메시아를 깃발로 높이 세우셔서 온 열방이 그리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나면 13절 “에브라임의 질투는 없어지고 유다를 괴롭게 하던 자들은 끊어지며”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을, 유다는 남유다를 대표합니다. 본래 한 동족인 두 나라가 갈라진 뒤 서로 질투하고 잡아먹을 듯 다투었는데, 메시아의 통치가 이루어지면 그 질투와 다툼이 끊어지고 하나 되어 화평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백성에게 맺히는 열매입니다. 우리가 믿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라면, 우리 안에 맺혀야 할 열매도 이것입니다. 질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서로 괴롭히고 다투고 경쟁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됨을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즐거움인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면, 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의무가 아니라 견딜 수 없는 기쁨이 됩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회복된 세상은 정치나 경제가 아니라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충만해질 때 이루어집니다. 적당히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생각하면 감사와 감격이 넘치도록 그 지식이 우리 안에 가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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