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1절)
이사야 7-11장까지 하나님은 순종하지 않는 남유다를 향해 거듭 심판을 경고하시고 회복에 대한 메시지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12장에 오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시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회복입니다. 그러나 죄를 그대로 둔 채 복을 주는 것은 참된 회복이 아니기에, 하나님은 백성을 정화하시고 그다음에 이 구원의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 말씀은 그 구원의 날에 부를 노래입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그날에’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1절 “그날에 네가 말하기를”, 4절 “그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입니다. 그날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의 입에서 한숨과 탄식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게 됩니다. ‘그날’은 하나님이 구원을 행하시는 날입니다. 어두운 심판의 과정이 지나고 구원의 빛이 임합니다.
우리도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 언제까지 이 어려움을 견뎌야 합니까, 이것이 끝나기는 합니까”하고 부르짖을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과정이 끝나야 진정한 구원과 회복이 있다 하십니다. 그러니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지날 때 기억해야 합니다. 구원과 회복의 날이 반드시 올 것이며 그 날에는 하나님이 지금까지 왜 이렇게 이끌어 오셨는지를 이해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될 것입니다.
1-3절은 개인의 찬양입니다. 1절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여기서 ‘전에는’과 ‘이제는’이 대비됩니다. 전에는 하나님이 진노하셨는데, 이제는 그 진노가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진노가 돌아선 것으로 끝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안위하십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나를 품에 안아 주시고 보호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 찬양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진행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다수는 징계를 받았고, 지금 이 노래는 남은 소수의 사람들이 부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다수를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말씀대로 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그 가운데 신실한 소수를 통해 그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느 쪽에 서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2절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워함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이 구절은 출15장,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뒤 모세와 백성이 부른 그 노래에 나오고, 시118편에도 나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새로운 출애굽의 노래입니다. 특히 2절 앞부분을 보면, “내가 신뢰하고 두려워함이 없으리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때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두려울 때가 많습니다. 대개 문제를 만났을 때입니다. 그런데 왜 두렵습니까. 하나님보다 문제가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신뢰할 때, 그 하나님이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깊이 생각할 때, 두려움이 사라진다고 강조합니다. 우리 인생에는 계속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그 문제를 이겨내는 길은, 이 모든 문제보다 하나님이 훨씬 크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지금 일하고 계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이 두려울 때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내가 아는 하나님은 이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인가.
3절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이 구절에도 출애굽의 그림이 담겨 있습니다. 광야에서 물이 없어 고통당하던 백성에게 하나님이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목마르고 메마른 삶을 생수로 채워 만족시키시는 분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목마른 인생을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소망은, 크신 일을 행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5절)
4절부터 찬양이 개인을 넘어 공동체로 확대됩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 모두 함께 찬양하며 온 세상에 그 이름을 선포하자는 것입니다. 4절 “그날에 …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5절 끝에는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너무 크고 놀라워 우리 안에만 담아 둘 수 없기에, 만국 중에 선포하고 온 땅에 알리자고 합니다.
여기서 ‘그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찬양의 이유는 5절에 있습니다.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행하셨음이니” 하나님이 극히 아름다운 일을 행하셨는데, 그 ‘아름다운 일’은 절망 가운데서 우리를 건지시고, 진노를 돌이켜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에 담아 둘 수 없어 찬양하고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이 다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났더니 너무 좋아서, 이것을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렇습니다. 구원의 은혜가 너무 크고 감사해서 혼자 담아 둘 수 없어, 온 세상에 선포해 그들도 이 생명의 하나님을 만나게 하자는 것입니다. 다만 순서가 있습니다. 내가 먼저 이 은혜를 경험하고, 먼저 하나님을 아름답게 예배하여 그 은혜로 충만해진 다음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내 안에 은혜와 기쁨이 있어서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하는 자가 도리어 은혜를 받습니다. 전하면서 내 안의 은혜와 기쁨이 다시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6절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우리가 소리 높여 선포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크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을 주관하시고, 합력하여 반드시 선을 이루시며, 반드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구원과 회복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이해할 수 없는 일, 힘들고 어려운 때가 있습니다. 질병으로 긴 터널을 지나며, 언제 끝날지 결과가 어떨지 알 수 없어 불안이 마음에 자리 잡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할 때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마음이 두려울 때, 내가 아는 하나님이 이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며 신뢰합시다.
다른 하나는 먼저 예배하고, 그 은혜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는 삶이 먼저입니다. 그 예배를 통해 은혜로 충만해지고, 그 충만함으로 하나님이 행하신 아름다운 일을 다른 이들에게 선포하고 증거하는 것, 그것이 복된 성도의 삶입니다. 오늘 하루도 충만한 은혜를 기쁨으로 전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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