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7:1-14절 / 능력의 반석이신 하나님(26.08.05)

2026.08.5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그 날에 야곱의 영광이 쇠하고”(4절)

열방을 향한 심판을 계속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 앗수르, 블레셋, 모압을 다루셨다면, 오늘은 유다 북쪽에 있는 다메섹, 곧 아람과 북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유다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그 뜻대로 운행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십니다.

1절 “다메섹에 관한 경고라 보라 다메섹이 장차 성읍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라” 다메섹은 아람의 수도입니다. 3절 “에브라임의 요새와 다메섹 나라와 아람의 남은 자가 멸절하리라”고 나오는데,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곧 하나님이 아람과 북이스라엘 두 나라를 함께 책망하십니다.

이 두 나라는 앞서 7장에서 서로 동맹을 맺고 남유다를 공격했던 나라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치려고 연합했던 그 두 나라를, 이제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다메섹은 그 당시 무역의 중심으로 부강하고 견고한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메섹이 성읍조차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된다고 하십니다. 어제 모압도 그랬듯이, 지금 보기에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견고한 것도 하나님이 손대시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4절부터 북이스라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그날에’라는 말이 반복됩니다(4,7,9). 세상이 하나님 없이도 잘 돌아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손대시는 날이 반드시 있습니다. 4절 “그날에 야곱의 영광이 쇠하고 그의 살진 몸이 파리하리니” 그토록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의 영광이 완전히 쇠하고, 살진 몸이 파리하게 마른다고 합니다. 북이스라엘은 우상을 숭배하다 멸망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손으로 아세라 상과 태양상을 만들어 숭배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풍요롭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풍요를 원했던 그들의 몸이 도리어 파리하게 말라 갑니다. 하나님 없는 풍요는 잠깐 누릴 수 있을지 몰라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6절 말씀이 놀랍습니다. 완전히 말라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북이스라엘에도 무엇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남아 있다’는 말이 세 번 반복됩니다. 감람나무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열매 두세 개가 남고, 무성한 나무의 먼 가지에 네다섯 개가 남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토록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북이스라엘인데도, 하나님이 그 가운데 남은 자를 남겨두십니다. 그 남은 자를 통해 회복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진노 가운데서도 반드시 긍휼을 베푸시고 남겨두시는 분입니다.

7절 “그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이를 바라보겠으며 그의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뵙겠고” 심판이 임하자 그제야 북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안타까운 것은, 멸망하기 전에 하나님이 그토록 많은 선지자를 보내 “그렇게 살면 안된다, 어서 돌아오라” 하셨는데 그들은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선지자들의 말이 그대로 이루어져 나라가 멸망한 뒤에야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돌이켰다면 어떠했을까요.

지금 우리가 새벽마다 말씀을 듣고 매일 묵상하는 것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지자를 보내 외치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복된 삶입니다.

7절과 8절에 대조가 나타납니다. 7절은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고, 8절은 정반대입니다. “자기 손으로 만든 제단”과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라 목상과 태양상”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보다, 자기 손으로 짓고 만든 우상을 더 의지했습니다. 이것이 심판과 멸망의 길입니다.

지금 우리는 손으로 아세라 상을 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손으로 만들지 않았어도, 우리 안에 하나님보다 더 가득한 것이 있다면, 성경은 그것을 우상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 마음에서 하나님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붙들어야 할 것은 내 손으로 만든 우상이 아니라,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리니”(13절)

9절 보면 북이스라엘도 한때 부강한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부강함은 잠깐이었습니다. 결국 그 견고한 성읍들이 옛적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림받은 수풀 속 처소처럼 황폐하게 됩니다. 여기 “옛적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림받은”이라는 말은 가나안 땅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그곳은 견고하며 풍요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죄가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너희도 이 땅에서 죄악 가운데 거하면, 내 백성이라도 가나안처럼 무너뜨리겠다고.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이 지금 그대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10절이 그 이유입니다. “이는 네가 네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네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아니한 까닭이라”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경제나 군사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능력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능력의 반석’이라는 말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구원하시고 붙드시는 그 하나님을 두고, 다른 것을 의지하다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 능력의 반석이 얼마나 놀라운 분인지 12절부터 보여줍니다. 12, 13절에 반복되는 단어가 ‘소동’과 ‘충돌’입니다. 열방이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려고 얼마나 소동하고 충돌하는지 모릅니다. 12절 “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 바다가 치는 소리 같이 그들이 소동하였고” 남유다를 공격하는 열방의 위세가, 거대한 파도가 남유다를 집어삼킬 듯한 모습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에 밀려오는 문제의 파도와도 같습니다. 그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라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집채만 한 파도로 달려들면, 우리는 너무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열방이 많은 물이 몰려오듯 쳐들어올 때 누가 개입하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13절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리니” 하나님이 그 거대한 파도를 한마디로 꾸짖으십니다. 그 한마디에 그들이 바람에 날리는 겨처럼,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처럼 흩어져 사라집니다. 그토록 우리를 삼킬 것 같던 것이, 하나님의 한마디에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능력의 반석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14절이 답합니다. “보라 저녁에 두려움을 당하고 아침이 오기 전에 그들이 없어졌나니” 훗날 히스기야 왕 때 앗수르 왕 산헤립이 대군을 이끌고 와 남유다를 포위하고 위협했습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고, 하나님은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 군대를 치셨습니다. 성경은 그 군대 십팔만 오천 명이 밤사이 죽어 아침에 다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저녁의 두려움이 아침이 오기 전에 티끌처럼 사라진 것입니다. 이것이 실제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그런 능력의 반석이십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손으로 만든 우상이 아니라 나를 지으신 하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은 풍요를 좇아 자기 손으로 만든 우상을 의지하다 무너졌습니다. 우리도 손으로 깎지는 않았어도, 마음에서 하나님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한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 주관하지 않으시는 것이 하나도 없는 그 하나님을 마음의 첫자리에 두고 신뢰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다른 하나는 능력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문제의 파도가 한꺼번에 달려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거대한 파도를 말씀 한마디로 겨처럼, 티끌처럼 흩으시는 능력의 반석이십니다. 저녁의 두려움을 아침이 오기 전에 사라지게 하시는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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