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4:14-23절 / 여호와께서 왕이 되시고(26.08.12)

2026.08.12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그러므로 너희가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15절)

어제 본문은 슬프게 끝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땅에서 기쁨이 그치고 탄식만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14절에서 갑자기 분위기가 뒤바뀝니다. 심판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이처럼 심판과 찬양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려는지 묵상해 봅시다.

14절 “무리가 소리를 높여 부를 것이며 여호와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바다에서부터 크게 외치리니” 어제까지 그쳤던 소리가 새로운 소리로 바뀝니다. 세상의 흥청거리던 즐거운 소리는 사라지고, 이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찬양의 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 이 찬양이 한곳에서만 울리지 않습니다. 15절은 동방에서, 바다 모든 섬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한다고 하고, 16절은 “땅 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라고 합니다. 동쪽에서 서쪽 섬까지, 땅 끝에서까지, 사방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양하는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이렇게 찬양하는 이들은 누구일까요? 이사야가 계속 말해 온 ‘남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그 자리에서도, 남은 자들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양합니다. 여기에 심판의 이중성이 있습니다. 같은 심판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이지만, 하나님을 기다리던 자에게는 구원과 회복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찬양하는 내용이 14절 ‘여호와의 위엄’을 찬양합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강대국과 왕들이 다스리는 것 같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의지하거나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이 임하자 비로소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온 땅을 다스리시고 남은 자를 위해 일하고 계셨구나. 그 통치의 위엄을 깨닫고 찬양합니다. 또한 16절은 ‘의로우신 이에게 영광을 돌린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살고 말씀대로 살아도 왜 내 삶은 이토록 힘들고, 그렇게 살지 않는 이들은 왜 잘되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인가. 이런 오랜 질문을 품고 살아온 성도가, 이제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구나. 모르셨던 것이 아니라 다 아시고 그 때를 기다리고 계셨구나.

그런데 16절 중간에서 분위기가 또 한 번 바뀝니다. “그러나 나는 이르기를 나는 쇠잔하였고 나는 쇠잔하였으니 내게 화가 있도다” 찬양이 울리던 자리에서 갑자기 선지자의 탄식이 터집니다. 심판이 임하고 또 찬양이 울리다가 다시 심판으로 넘어가는 이 흐름이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묵시의 특징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떠올리면 이해가 됩니다. 위에서는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심판의 계획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하십니다. 그런데 아래에서는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면서도 여전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지나며,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양합니다.

선지자를 지치게 한 것이 무엇입니까? 16절 하 “배신자들은 배신하고 배신자들은 크게 배신하였도다” 여기서 ‘배신’이라는 말이 네 번 반복됩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이 이렇게 임하면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돌아설 것 같은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그 상황에서도 끝까지 제 길을 갑니다. 배신하고 또 배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지자에게는 견디기 힘든 아픔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능력으로 보여 주시면 잘 믿겠다”고 말하는 이들을 만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일하심이 눈앞에 보여도 배신하는 자는 끝까지 돌이키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니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기적과 이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실제로 어제 본문에서 하나님이 이 백성을 책망하신 것도 “기적을 못 보았다”가 아니라 “율법을 범하고 율례를 어기고 언약을 깨뜨렸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자기 백성과 관계 맺으시고 그들을 이끄십니다.

●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23절)

하나님은 끝까지 제 길을 가는 자들을 향해 “땅의 주민들아”라고 부르십니다. 24장에 ‘땅’이 거듭 나오는데, 이는 하늘 보좌에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이 땅이 전부인 듯,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듯 살아가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17절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임하였나니.” 이 세 가지의 나열은 의미가 있습니다. 심판이 점점 좁혀 들어오는 형식입니다. 곧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심판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8절이 그렇죠. 두려운 소리에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빠지고, 함정에서 올라오는 자는 올무에 걸립니다.

그리고 18절 뒤가 그 심판의 근원을 밝힙니다. “이는 위에 있는 문이 열리고 땅의 기초가 진동함이라.” ‘위의 문이 열린다’는 것은 창세기 7장 노아 홍수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물이 쏟아질 때 하늘의 창이 열렸습니다. 곧 하늘의 심판의 문이 열려 온 땅이 진동한다는 것입니다.

19-20절은 그 진동을 반복되는 말로 설명합니다. “땅이 깨지고 깨지며 땅이 갈라지고 갈라지며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 20절 “땅이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며 원두막같이 흔들린다.” 이 ‘원두막같이’라는 비유가 인상적입니다. 아무리 견고한 빌딩을 지어도,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그것이 원두막처럼 힘없이 흔들리고 주저앉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20절 “그 위의 죄악이 중하므로 떨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 이 모든 무너짐의 원인이 죄악입니다. 그 죄악의 핵심은 어제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저버린 데 있습니다.

21절에서 심판의 시야가 한층 넓어집니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높은 데에서 높은 군대를 벌하시며 땅에서 땅의 왕들을 벌하시리니” 하나님의 심판이 두 부분으로 임합니다. ‘높은 데의 높은 군대’는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도 나오는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영적 세력을 가리킵니다. 세상을 배후에서 조종하며 하나님께 도전하게 하는 사탄의 세력입니다. ‘땅의 왕들’은 그 세력의 도구가 되어 세상에서 전쟁과 혼란을 일으키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 영적 세력과 그 하수인인 왕들을 함께 심판하시고,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셨다가 형벌을 내리십니다.

그 결과가 23절입니다. “그때에 달이 수치를 당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라” 해와 달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하나님께서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어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그 찬란한 영광 앞에서, 해와 달마저 빛을 잃고 부끄러워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루실 궁극적인 승리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두 세계가 공존하는 시대에 남은 자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아, 우리는 그 사이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땅이 전부인 듯 배신하며 제 길을 가고, 그 가운데서 우리는 남은 자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남은 자는 소수이기에 때로 갈등하지만, 그럴수록 하나님이 반드시 승리하시고 영광 중에 통치하심을 기억하며, 의로우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기적이 아니라 말씀을 붙들고 견고히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눈으로 보고도 배신하는 자가 있듯, 기적은 우리를 견고하게 하지 못합니다. 깨지고 갈라지고 흔들리는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내 삶의 방향을 내려놓고 말씀을 묵상하며, 서로를 말씀으로 격려하고 세워 가는 성도가 됩시다.

0개의 댓글

댓글 제출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