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4:1-10절 / 횃불을 든 여인(26.09.08)

2026.09.8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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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에는 열두 사사가 등장하는데, 넷째 사사가 오늘 나오는 드보라입니다. 사사들이 대개 전쟁으로 나라를 구한 남성이었던 것과 달리, 드보라는 여성입니다. 남성 중심의 시대에 하나님이 여성을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1절 “에훗이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또'(야사프)가 되풀이됩니다. 사사기에서 모든 문제의 시작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말씀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렇게 고통당하고도 깨닫지 못해 이 악이 계속 반복되는 데 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솔에서 다스리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파십니다(2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대적의 손에 넘기신다는 것이 가혹해 보이지만,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죄악 가운데 오래 머무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주변 나라를 회초리로 사용하여 백성을 돌이키게 하십니다. 그런데 넘기신 대적이 ‘가나안 왕’입니다. 말씀에 순종해서 진멸했어야 할 가나안 족속인데 편의를 위해 남겨 둔 결과가 이제 그들을 짓누르는 압제자가 된 것입니다. 앞서 하나님이 “남겨 둔 자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되리라”하신 경고가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가나안 왕 야빈에게는 철병거 구백 대가 있었습니다(3절). 이것이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지를 알려면 그 시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철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던 때입니다. 셋째 사사 삼갈은 소 모는 막대기로, 훗날 삼손은 나귀 턱뼈로 싸웠습니다. 그것이 용맹해서가 아니라 변변한 무기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유다 지파도 골짜기 주민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가 철병거 때문이었습니다(1:19절). 그런데 야빈은 그 철병거를 무려 구백 대나 가졌으니, 이스라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군사력입니다. 그가 이스라엘을 이십 년 동안 ‘심히’ 학대했다고 합니다.

이 고통에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3절). 사사기의 악순환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문제의 원인이 되는 죄악 때문에 부르짖는 회개아 아니라, 대적의 공격이 힘들어서 부르짖습니다. 참된 회개 없이 고통의 해결만 구하는 부르짖음은, 그 고통을 되풀이하게 할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하나님 백성답게 바로 살고 있는가’를 먼저 돌아보는 부르짖음이 있을 때, 고통 때문에 부르짖는 일이 줄어들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부르짖음에 응답해 드보라를 세우십니다. 4절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드보라는 여러 이름으로 소개됩니다. 여선지자요, 사사요, 그리고 5절에서는 종려나무 아래 앉아 백성의 재판을 맡은 재판자입니다. 곧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고, 백성을 이끌며, 분쟁을 판결하는 세 역할을 함께 감당했습니다.

특히 드보라를 ‘랍비돗의 아내’라고 소개하는데, 랍비돗은 히브리어로 ‘횃불’ 또는 ‘번개’를 뜻합니다. 이를 남편의 이름으로 보기도 하지만, 드보라 자신을 가리키는 ‘불의 여인’, ‘횃불 같은 여인’으로 읽는 견해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 이름은 드보라가 어떤 여인인지를 알려 줍니다. 백성 대다수가 악을 행하고 말씀에서 벗어나 살아가는 어두운 시대, 그 어둠 한복판에서 드보라는 세상에 동화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 백성에게 전하며 살았습니다. 곧 그는 어두운 시대에 횃불을 든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온 백성이 어둠에 잠긴 그때에도, 말씀을 붙든 한 여인을 빛으로 세워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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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라는 전쟁에 나설 장군으로 바락을 부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전합니다. 다볼산에 병사 만 명을 모으면, 하나님이 시스라와 그 병거들을 기손강으로 이끌어 바락의 손에 넘기시겠다는 것입니다(6-7절). 이는 탁월한 작전입니다. 철병거의 위력은 마른 평지에서 발휘되는데, 강가로 유인하면 병거는 달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작전만 아니라 결과까지 미리 일러 주십니다. 7절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주리라” 승리가 보장된 명령이니, 바락은 그저 순종하면 됩니다.

그런데 바락의 대답이 뜻밖입니다. 8절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용맹한 장군일 것 같은 바락이, 드보라가 함께 가야만 나서겠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이 승리를 약속하셨어도 그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고, 앞에는 눈에 보이는 철병거 구백 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락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사사 드보라를 더 의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락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 기대던 이스라엘 전체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8절부터 ‘함께’라는 말이 4번 반복됩니다. 바락이 “당신이 함께 가면”, 드보라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게데스로 올라갑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와 함께 가고 있는가?”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과 함께 가는 것이 참된 승리인데, 보이는 사람을 의지해 사람과 함께 가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바락의 불신앙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9절, 드보라는 함께 가겠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가는 이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다면 승리의 영광이 바락에게 돌아갔을 텐데, 그가 머뭇거렸기에 전쟁은 이겨도 그 영광은 다른 한 여인에게 돌아가리라는 것입니다. 드보라도 여인인데, 시스라를 죽일 그 여인은 누구일까? 그 답은 다음 이야기에서 밝혀집니다. 결국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의 용맹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또한 그 영광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행동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는 무엇을 위해 부르짖는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고통이 힘겨워 부르짖었지만, 죄를 돌이키는 회개가 없어 그 고통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우리도 문제의 해결만 구하며 부르짖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나는 하나님 앞에 바로 살고 있는가’를 말씀에 비추어 돌아보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그 삶을 회복시키십니다.

다른 하나는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바락은 승리를 약속받고도 보이는 사사를 의지해 머뭇거리다 영광을 잃었습니다. 우리도 인생길에서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보이지 않아도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람보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분과 함께 걷는 것이 가장 복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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