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4:11-24절 / 앞서 나가시는 하나님(26.09.09)

2026.09.9 | 매일성경 | 코멘트 0개

●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 주신 날이라”(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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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본문에서 바락은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도 드보라의 동행을 요구하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사람을 의지한 것입니다. 그때 드보라는 승리는 주어지겠으나 그 영광은 한 여인의 손에 돌아가리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야기는 엉뚱해 보이는 한 절로 시작합니다. 11절은 갑자기 겐 사람 헤벨을 소개합니다. 겐 족속은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으로, 사사기 1장은 이들이 유다 자손과 함께 남방에 거주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헤벨은 “자기 족속을 떠나” 북쪽 게데스 가까이로 장막을 옮겼습니다. 언약 백성의 곁을 떠난 것입니다. 17절은 그 결과를 알려 주는데, 하솔 왕 야빈과 헤벨의 집 사이에 화평이 있었습니다. 그런 헤벨 가정의 한 사람이 이스라엘 문제를 해결합니다.

드디어 전쟁이 시작됩니다. 12-13절에서 시스라가 움직입니다. 바락이 다볼 산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철 병거 구백 대와 모든 백성을 모아 기손 강으로 나아갑니다.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지배했던 자신감으로 최신 무기를 앞세웁니다. 모든 병거와 모든 백성이 나왔다고 강조합니다. 상식적으로 이스라엘이 승리하기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가 스스로 선택해서 나간 기손 강은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장소입니다. 어제 본문 7절에서 하나님은 바락에게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을 기손 강으로 이끌어 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시스라는 자기 작전대로 움직였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가 도착한 곳은 하나님이 정해 두신 자리였습니다. 사람의 결정과 판단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드보라가 명령합니다. 14절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주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나가지 아니하시느냐” 넘겨주시겠다는 미래형이 아니라 넘겨주신 날이라는 완료형입니다. 아직 칼 한 번 부딪히지 않았는데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함께 가시는 정도가 아니라 앞서 나가십니다. 바락이 할 일은 산에서 내려가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면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승리를 주십니다.

15절이 전쟁의 상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여호와께서 바락 앞에서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시매” ‘혼란에 빠지게 하다’로 옮겨진 히브리어 동사는, 홍해에서 하나님이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셨을 때, 그리고 여호수아 때 하나님이 아모리 연합군을 치셨을 때 쓰인 말입니다. 성경이 여호와의 전쟁을 말할 때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앞서 싸우셨습니다.

이어지는 5:4,21절은 이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했는지를 알려 줍니다. 기손 강이 그들을 표류시켰다고 노래합니다.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고, 구백 대의 병거는 진흙에 잠겼습니다. 그래서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걸어서 도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떨게 한 최강의 무기를 완전히 무력화시키셨습니다.

16절은 바락이 하로셋 학고임까지 추격했고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져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스라는 바락이 추격하는 반대방향으로 도망합니다. 적의 머리인 시스라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가지고”(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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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하는 시스라의 발이 향한 곳이 헤벨의 장막입니다. 화평 조약이 있으니 안전하리라 여겼을 것입니다. 그를 맞은 것은 헤벨의 아내 야엘이었습니다. 야엘은 시스라를 환대합니다. 18절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시스라가 야엘에게 해야 할 말은 야엘이 담대하게 합니다. 야엘은 그를 이불로 덮었습니다. 물을 청하자 우유를 주었습니다. 5장은 이 장면을 더 자세히 노래합니다. 물을 구했는데 엉긴 젖을 귀한 그릇에 담아 주었다고 합니다. 청한 것보다 후하게 대접한 것입니다. 이 후한 대접으로 시스라는 깊은 잠에 빠집니다.

시스라가 잠들자 야엘이 든 것은 21절, 장막 말뚝과 방망이입니다. 유목민의 장막을 치고 걷는 일은 여인의 몫이었습니다. 특별한 무기가 아니라 매일 쓰던 연장입니다. 사사기는 이런 도구를 여러 번 보여 줍니다. 삼갈의 소 모는 막대기가 그랬고, 훗날 삼손의 나귀 턱뼈가 그랬습니다. 무기가 없어서 잡은 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무기가 됩니다.

야엘은 담대하고 거침없이 말뚝을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대고 박습니다. 그러자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혔다고 합니다. 이 장면은 에훗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에훗이 에글론을 찌를 때 칼자루까지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사사기는 이 여인의 행동을 사사의 행동과 나란히 놓고 있습니다. 마땅히 바락이 해야 할 일을, 하나님이 세우신 장군이 하나님을 온전히 붙들지 못한 그 자리에서, 한 여인이 대신 감당했습니다.

22절, 바락이 시스라를 추격해 도착했을 때, 야엘이 나가 맞으며 “오라 네가 찾는 그 사람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합니다. 들어가 보니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드보라의 말대로 영광은 그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사사기는 훗날 아비멜렉이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고 죽는 장면에서도 같은 것을 말합니다. 그 시대에 여인의 손에 죽는 것은 용사에게 가장 큰 수치였습니다.

여기서 사사기가 말하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조건을 보고 사람을 쓰지 않으십니다. 야엘은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었고, 장군도 아니었으며, 남편이 대적과 조약을 맺은 집의 여인이었습니다. 그 손에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습니다.

23절과 24절이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다.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하게 하셨고,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야빈을 “점점 더 눌러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삿 1장과 대조를 이룹니다. 1장은 쫓아내지 못하였다는 말이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손이 점점 더 강해집니다. 여호수아가 무너뜨렸다가 다시 일어섰던 하솔의 세력을 이제야 끝납니다. 순종이 있을 때 대적은 무너지고 하나님의 백성은 앞으로 나아갑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깁니다. 하나님은 앞서 나가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세우시고 혼자 가게 두지 않으십니다. 함께 계실 뿐 아니라 앞서 행하십니다. 이 전쟁에서 바락이 한 일은 산에서 내려간 것뿐이고, 병거를 무너뜨린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일이 감당할 수 없어 보일 때, 우리가 붙들 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앞서 가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쓰십니다. 조건이 갖춰진 사람에게만 일을 맡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방 여인의 손과 장막 말뚝 하나로도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이루셨습니다. 내게 있는 것이 초라해 보여도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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